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 마음을 얻기 위한, 관계의 몸짓과 관계의 총성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여왕 '앤'을 사이에 둔, '애비게일'과 '사라', '사라'와 '애비게일' 사이의 경쟁으로 본다면, 1장부터 8장까지의 '애비게일'과 '사라'를 번갈아 오가는 발화 구성 형태의 타이틀 카드는, 어쩌면 평이하게 비칠 수도 있을, 흔하게 다가올지도 모를 이야기에 긴장을 불어넣고 관객들이 계속 집중해서 다음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장치다. 여왕의 '더 페이버릿'(The Favourite)이 되기 위한 '여왕의 여자'들의 싸움이라 칭할 수 있을까.
영화의 4장 "큰 문젠 아니에요"(A minor hitch.)의 중요한 대목을, 특히 작품 전체에서 흐름상 중요한 의미를 띠는 대목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앤'과 '애비게일'이 침실을 앞에 두고 춤을 추는 신을 언급하고 싶다. 그 장면의 내용을 늘어놓고 싶은 게 아니라 해당 대목이 어떻게 영화에서 표현되고 있는지를 말이다. 통증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앤'에게 '애비게일'은 춤을 춰보자고, 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앤'이 거기에 응답하게 되는데, 이 장면은 '사라'와 '애비게일'이 후원에서 비둘기를 향해 총을 쏘는 대목의 음성과 일부 겹쳐져 있다. 품을 떠난 비둘기를 향해 사격을 하는 것과,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춤을 추는 것.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관계의 행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춤과, 전쟁의 잔혹함과 다툼 혹은 경쟁의 속성을 상징하는 총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것일까. 작중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견제하고 '사라'와 '애비게일'이 서로 경쟁하게 되듯이, 여왕이 두 사람의 상대를 향한 질투를 일부러 이용하게 되듯이. 한편으로는, 대체로 두 사람이 춤을 출 때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혹은 상대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 '몸짓'을 통해 노력하게 되듯이, 총이라는 도구는 잘 사용하면 막강한 무기가 되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한 것이기도 하듯이.
'페이버릿'이 사전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One of my favorites' 같은 표현이 영어권에서는 자주 쓰이곤 하지만),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이 결국 하나를 초과할 수 없음을 내포한다. 그래서 부정관사 'A'가 아니라 정관사 'The'가 앞에 붙는 것이 아닐까. 여기까지 여덟 개로 구성된 영화의 각 장(Segment)에 대해 적고 나니 이제야, 결말을 포함한 영화 내용을 여과 없이 언급하는, 좀 더 긴 글을 적어보고 싶어 졌다. 관계의 몸짓과, 관계로부터 울려 퍼지는 총성이 이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에 관하여. 각 장이 영화의 구조상 어떤 역할을 하고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서술하려면 영화의 상세한 내용을 반드시 다뤄야만 하겠기 때문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 2018),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2019년 2월 21일 (국내) 개봉, 119분, 15세 관람가.
출연: 올리비아 콜먼, 엠마 스톤, 레이첼 바이스, 니콜라스 홀트, 조 알윈, 마크 게티스, 제임스 스미스 등.
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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