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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cosmos-j 2018. 7. 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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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안에 담기는 스스로(즉, 연출자인 동시에 피사체가 되는)에 관해서는 망설임 없이 거리를 허물면서, 자신들의 여정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거리와 배려를 지키는 사람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후반부에서, 나는 대사 하나를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호수 볼까요?"라고 말하는 건 JR이 아니라 아녜스였고, 직전 신에서 JR은 넌지시 "호수 갈까요?"라고 제안한다. 다만 단어 자체는 아무래도 중대한 건 아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던 JR이 아녜스를 바라보며 선글라스를 벗어 보이는 순간. 영화는 그제야 완성되고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한쪽은 시력이 약해져가고 다른 한쪽은 거의 항상 선글라스를 낀 채였던, 두 사람은 즉흥적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여정 자체를 예술로 만든다.


모든 다큐멘터리는 연출자의 의도와 시선이 반영되는 것이며 또 역설적으로 다큐멘터리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해선 그게 필요하다는 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통해 헤아려지는 두 사람의 여정은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각자 담아보자'고 했던 처음의 대화를 제외하면 짜고 가는 게 아니라 가면서 그때그때 짜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알아보기' 전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난스러운 모놀로그 같은 오프닝을 빼면. 이 작품이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초월적 경험을 안겨주는 것은,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두 연출자가 바라보는 예술과 삶의 관계 덕분이다. 이보다 더 사랑스럽고 지혜로운 다큐멘터리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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