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밖에서

헐크 사촌이 어느날 갑자기 헐크가 된다면? <변호사 쉬헐크>

cosmos-j 2022. 11. 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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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사촌이 어느날 갑자기 헐크가 된다면?
<변호사 쉬헐크>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어벤져스'의 원년 멤버 '헐크'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천재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또 다른 자아와도 같은 '헐크'는 분노를 그대로 힘의 원천으로 삼아 '타노스'와도 육탄전을 벌일 만큼 강력한 물리력으로 많은 수퍼히어로 영화 팬들의 '최애' 캐릭터 중 하나가 되었죠. 그런 헐크의 사촌이자 헐크와는 또 다른 매력과 유쾌함까지 장착한 여성 히어로 '쉬헐크'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최근 공개된 마블의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 <변호사 쉬헐크>입니다.

등장인물

제니퍼 월터스 - 잘 나가는 검사이자 브루스 배너의 사촌 동생. 사고로 난 상처에 사촌 오빠의 피가 흘러들어가 '쉬헐크'가 된다.
브루스 배너 - 오랜 기간 '헐크'로 살아온 천재 과학자. '쉬헐크'가 된 제니퍼에게 수퍼히어로의 삶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준다.
에밀 블론스키 - 군인 출신으로 '슈퍼 솔저 혈청'을 투여받아 헐크와 유사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과거 어떤 사건으로 현재는 교도소에 수감 중.

줄거리: 촉망받는 검사로 커리어를 쌓던 제니퍼 월터스는 사촌 오빠이자 어벤져스 멤버 ‘헐크’로 알려진 브루스 배너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던 중 교통사고로 인해 상처에 브루스의 피가 묻으면서 분노하면 헐크로 변하는 능력이 생긴다. 몇 개월 뒤 우연한 계기로 법정에서 헐크로 변하게 되면서 제니퍼는 사람들에게 ‘쉬헐크’로 불리기 시작한다. 수퍼히어로가 되자 하루아침에 직장도 잃고 원치 않는 관심에 시달리던 중 제니퍼는 브루스의 도움으로 ‘헐크 사용법’을 점차 터득해나가고, 한 유명 로펌으로부터 수퍼히어로 전문 변호사 직을 제안받는다. 법정으로의 화려한 복귀를 기대했지만 제니퍼에게는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이 언급되니, 가급적 작품을 감상하시고 난 뒤 글을 읽으시길 권해요.

스페셜 리뷰 포인트 1 특별한 능력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른다
변호사와 수퍼 히어로, 하나만 하기에도 힘들어서

사촌 오빠가 다름아닌 ‘헐크’이니 어쩌면 수퍼히어로의 삶에 대해서 누구 못지 않게 잘 이해하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똑똑하기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검사 제니퍼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헐크가 된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단 처음에는 원치 않는 때에 헐크로 변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힘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워 자칫 다른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힐지 모르는 위험성이 있었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브루스가 여러 해 동안 헐크로 살면서 경험해 온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모르지 않는 제니퍼가 브루스에게 보였던 첫 반응은 “나 헐크 안 할래”였습니다.

그렇지만 헐크의 능력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아직까지 없었고, 결국 제니퍼는 브루스의 도움을 받아 육체와 정신 사이의 균형을 조절하는 노하우 등을 얻으며 점차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헐크 적응기’가 <변호사 쉬헐크>의 주인공 ‘제니퍼 월터스’에게 몇 달 동안 일어난 일이었죠. 이제는 나름대로 익숙해졌다고 여기던 그때, 하필 법정에서 어쩔 수 없이 헐크로 변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며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쉬헐크’라고 부르며 영웅처럼 취급했지만 정작 제니퍼는 며칠 지나지 않아 검사직에서 해고를 당하게 됩니다. 너무 강력한 힘 때문에 자칫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이유로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 캐릭터 ‘스파이더맨’이 영화로 처음 등장한 게 벌써 20년 전입니다. 그만큼 수퍼히어로가 주인공인 작품은 익숙하지만 아직도 이 분야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아우르는 주제는 흥미롭게도 ‘일반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것입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사가 다름아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입니다.) <변호사 쉬헐크>의 배경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으로부터 몇 년 후, 시간선이 뒤틀리면서 다른 평행 세계들로부터 ‘슈퍼휴먼’(일반인과는 다른 초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나타나는 시점입니다. 제니퍼가 있던 법정에도 바로 그들 중 하나가 난입해 난동을 부렸고, 제니퍼는 헐크의 모습으로 그걸 멋지게 제압했지만 한 번 사람들에게 능력이 공개되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니게 되죠.

얼핏 생각하면 강한 힘으로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소셜미디어와 언론에서 연일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화나 코믹스를 통해 만나는 수퍼히어로의 모습은 멋진 외모와 화려한 의상, 강력하고도 초인적인 능력들 덕에 좋은 점만 있을 것 같지만 누구나 자연스럽게 누리던 일상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만 하니까요. 예를 들면 퇴근 후 가볍게 음료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저녁이나 혹은 날씨 좋은 주말 오후 공원을 산책하는 일 같은 것을요. 검사직에서 해고된 제니퍼는 ‘쉬헐크’라는 꼬리표 때문에 계속해서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한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자리를 제안합니다. 그 로펌은 수퍼히어로 전담 특별 부서를 만들었는데 마침 법조인이자 ‘쉬헐크’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제니퍼가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죠. 이제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를 뒤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릴 것이지만, <변호사 쉬헐크>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인기가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스페셜 리뷰 포인트 2 – 정보의 바다에 휩쓸리지 않는 법
오락성과 메시지를 모두 잡은 ‘쉬헐크’만의 매력

로펌이 제니퍼에게 좋은 근무 환경과 함께 내건 입사 조건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어보미네이션’의 변호를 맡는 것이었습니다. 어보미네이션의 본명은 에밀 블론스키. 그는 군인이었지만 군의 비밀 프로젝트로 개발되었던 ‘슈퍼 솔저 혈청’(신체를 강하게 해주는 약물) 때문에 헐크와 유사한 능력을 지닌 ‘어보미네이션’이 되어 여러 말썽을 일으켰고 특히 제니퍼의 사촌인 브루스와도 과거에 마찰이 있었습니다. 제니퍼로서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브루스의 권유로 인해 로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쉬헐크’가 아닌 변호사로서의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됩니다.

어보미네이션의 석방을 위한 공판이 열린다는 소식에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이 관심은 자연스럽게 변호사가 된 ‘쉬헐크’, 제니퍼를 향하는데 수 년 동안 활약한 어벤져스 멤버들에 비하면 아직 인지도가 낮은 ‘쉬헐크’에 대해 온갖 루머가 쏟아집니다. ‘어벤져스의 멤버가 되고 싶어했지만 어벤져스로부터 거절당했다’라는 내용부터 ‘어보미네이션의 변호를 맡게 된 건 그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실 쉬헐크는 존재하지 않고 누군가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다’ 등과 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죠. 게다가 한 방송사 간판 프로그램에서 제니퍼를 인터뷰하는데 진행자의 질문은 ‘쉬헐크의 다이어트 및 몸매 관리 비법은?’ 같은 것입니다. 변호사로서 제니퍼의 전문성과도, 쉬헐크의 능력에 대한 것과도 상관없는 가십거리에 불과한 내용이었죠.

어벤져스의 멤버 ‘블랙 위도우’를 연기한 배우 스칼렛 조핸슨 역시 실제로 한 매체 인터뷰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는 캐릭터과 연기에 대한 질문을 했던 기자가 스칼렛 조핸슨에게는 몸매 관리 노하우에 대한 질문을 해서 비판거리가 되었는데,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 밖 실제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은 고스란히 <변호사 쉬헐크>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작중 소셜미디어에서는 네티즌들이 “왜 헐크의 능력을 여성에게 주었나”, “여성 수퍼히어로는 원하지 않는다”와 같이 성차별적 게시물을 다수 올리기도 하는데요, 제니퍼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고충은 한편으로 헐크와 떼어놓을 수 없는 ‘분노’와 두려움’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글과 사진, 영상을 가리지 않고 넘쳐나는 정보들 때문에 우리는 종종 무엇이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 어떤 정보를 신뢰해야 할지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 매체와 소셜미디어가 수십 억 인류를 거리를 초월해 연결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어디에 사는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지만 동시에 너무 촘촘하고 많은 연결망으로 인해 과부하가 걸리는 양면적인 속성을 <변호사 쉬헐크>는 놓치지 않고 ‘변호사’와 ‘수퍼히어로’ 사이를 오가며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변호사 쉬헐크>를 추천하고 싶은 건 위와 같은 시사점을 너무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대중적인 화법으로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제니퍼는 종종 화면을 응시하며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가벼운 농담이나 푸념도 있고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들리지 않는 뒷담화 같은 것도 있습니다. “카메오 같은 건 기대하지 말라”고 독백한 뒤 이어서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의 마법사 캐릭터인 ‘웡’이 깜짝 등장하기도 하는 등 웃음 터지게 하는 장면들이 숨어 있는 가운데 작품 초반부 사촌오빠와 남미의 한 섬에서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은 쉬헐크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면서도 캐릭터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게 합니다.

요즘 수퍼히어로 서사는 끊임없이 그 메시지와 소재 면에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수많은 대중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수퍼히어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속성은 웃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의 한가운데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사회적 화두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변호사 쉬헐크>를 보면서 우리가 미디어 속 히어로들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보고, 또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지도 한번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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