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적끄적
그렇지 않은 모든 시간들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해주는 어떤 가을의 풍경
cosmos-j
2022. 11. 2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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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강하고 너그럽고, 아름답게 빛나고/ 세계는 넓어지기도/ 깊어지기도 합니다'
-황인숙, 「에세이의 탄생」,
『내 삶의 예쁜 종아리』에서 (문학과지성사, 2022)
『내 삶의 예쁜 종아리』에서 (문학과지성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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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일들을 지극히 제 일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 생을 지탱할 누각을 세우고 싶어 늘 고민하고 돌아보는 사람. 연민하지 않고 나날이 기록하는 사람. 무엇이 서로를 슬프게 하고 기쁘게 하는지 다정하게 감시하는 사람. 다양한 얼굴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사람. 순간이 유일한 순간일 수 있도록 마음과 감각을 다하는 사람. 다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을 그저 바라보는 일로도 가능하게 하는 사람. 우리는 오늘도 실타래를 풀고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계절이 흘러가는 느낌을 휘발되는 감각이 아니라 보존되는 기억으로 삼고, 지나간 시간들조차 오늘을 위한 것이었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우리는 오늘이 내일로 향할 것을 믿을 수 있다. 당신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고 조금도 좁지 않다. 모든 지난 선택들이 오늘을 향해 삶의 방향을 조금씩 틀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 그건 내게도 정확히 마찬가지다. 단지 고양이를 쓰다듬고 각자의 책을 읽고 지나온 일상들을 공유하는 이런 순간들이, 그렇지 않은 모든 시간들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해주는 어떤 가을의 풍경을 마주하고서는. 두 눈을 믿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 걸음 한 걸음.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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