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밖에서

영화 '다가오는 것들'(2016)

cosmos-j 2018. 10. 2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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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나탈리'가 부러웠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듯한 그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는 듯 보이다가도 이내 평정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그가 평생 일궈온, 철학 교육자로서의 기품이, 읽고 쓰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 자체가, '나탈리'의 지금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부러웠던 건, 아직 그런 상황에서 나를 지켜내기엔 한참 미숙하고 먼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나탈리'는 어딜 가나 책을 끼고 살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에 의연할 줄 안다. 감정을 섣불리 앞세우지도, 그렇다고 그 감정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는 영화 내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에게도 내게도 앞으로도 희망적인 삶만 있지는 않겠지만, 쌓아온 이 삶의 시간이 아주 헛된 건 아니라는 바를 <다가오는 것들>의 이야기는 차분하고 극도로 섬세하고 절제된 화법으로 말한다. 무엇보다도 좋은 영화는, 대답하기보다 질문을 남기는 영화이며 파토스보다는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담을 줄 아는 영화다.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인 <L'avenir>는 '미래'라는 뜻이다. '도대체 내 삶에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하는 회의와 낙담에서 벗어나, 그럼에도 지금 내 삶에는 단 한 번도 마주해보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내가 나를 지킨다면, 미래는 계속해서 다가오는 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영화. 작품에 활용된 숱한 철학 레퍼런스들이 조금도 과잉되지 않고 풍요를 이루는 영화. 불화하는 세계에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기, 에 관하여. 평생의 태도에 관하여. 나는 이런 영화야말로 만나기 쉽지 않은 영화라 단언할 수 있다. 이렇게 밀도 높은 이야기의 연출자는 1981년생, 그리고 상영시간은 단 102분. '자아를 찾아 훌쩍 떠나는 여행' 따위의 도식도 따르지 않는 대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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