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위 기사가 핵심을 완전히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기 때문에 더 설명할 게 전혀 없기는 한데요. 주주명부의 열람 및 등사를 '청구'할 수 있다는 상법 조항은 수 십 년 전에 만들어졌고 지금과 달리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이 희박할 때였습니다. 애초에 열람 및 등사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언론 매체 등을 통해 '공개'되어도 된다는 것 자체가 차원이 전혀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한번 예를 들어 생각해 볼까요? 특정 주주가 상법상의 권리를 행사에 회사에 주주명부 열람 요구를 했고, 상법에 명시된 조항이니까 어쩔 수 없이 회사가 주주명부를 제공해 줬다고 생각해 보죠.
상장회사의 주주는 적게는 수 천 명부터, 많게는 100만 명이 넘습니다. 실제 주주명부에는 계좌번호나 국적과 같은 보다 상세한 정보가 담기지만, 일반적으로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을 통해 법원이 '인용'해주는 정보는 <이름, 주식 수, 주소>입니다. 여기서 관건은 '주소'입니다. 어떤 주주분들은 자기 집 주소가 노출되는 게 싫어서 자신이 투자한 그 회사의 본점 주소라든지 다른 정보를 기입해놓기도 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증권사에 등록된 주주의 주소는 자신의 자택 주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명부를 받아간 주주가 예를 들어서 주주들의 의결권을 규합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비용을 들여 주주명부를 토대로 주주 수 백, 수 천 명에게 우편물을 발송했다고 해보죠. 그 우편물은 어떤 주주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주주는 예컨대 자기 배우자 몰래 주식투자를 해서 그 사실을 배우자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러니 그 우편물을 제대로 간수하거나 챙기지 못해서 배우자가 그걸 알게 되는 순간, 가정 내에 주식투자와 관련한 (부부싸움 등) 시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주주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도 원하지 않은 정보가 동의 없이 가족에게 노출된 겁니다. 이 경우 발행회사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침해한 걸까요, 아니면 처음 주주명부를 요구했던 주주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되어 주주명부에 기재된 주소 등 주주 정보를 이용한 걸까요? 배우자랑 한바탕 부부싸움을 한 그 주주는 원치 않는 개인정보가 누군가에게 노출되었다며, 주주명부를 회사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자신이 피해를 봤다며 회사에 책임을 물으려고 할 겁니다. 회사는 상법상 의무를 다했을 뿐인데,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만약 주주명부를 입수한 누군가가 이야, 이 회사 주주명부 받아서 한번 살펴봤더니 무슨무슨 증권회사도 있고 무슨 펀드도 있고 저기 무슨 시 무슨 동에 사는 누구누구도 있대, 하고 떠들고 다니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주주는 아무 잘못이 없을까요? 주주명부에 기재된 주주 수가 수 백 명이든 수 천, 수 만 명이든 그게 개인이든 법인이든 기관이든, 그 자체로 대단히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의 리스크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면 '이번 분기 주주명부를 보니 특정 기관이 주식을 다량으로 매수했다'라고 한다면, 그게 중요한 투자정보가 된다면, 그래서 장차 주가가 오르게 된다면, 그 주주명부를 입수한 자는 이득을 보지 않았을까요? 그 주주가 그 정보를 투자에 이용했다면 그건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정보이용 이용행위 금지 조항(174조)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주주면 주주명부의 정보를 알 수 있다, 는 건 그러니 굉장히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열람등사를 청구할 수 있는 것과 그 주주명부상에 기재된 정보가 언론 등 공개적인 채널을 통해 '공개'되는 것이 과연 같은 층위의 문제일까요? 상법상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기관)의 의사와 관계없이 외부에 공개되어도 되는지 여부를 법적, 제도적, 윤리적으로 담보해 줄까요? 상법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상위 법령인가요? 요즘 소액주주연대 카페를 운영하거나 주주행동을 외치고 실행하는 분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활동의 취지든 회사에 대한 관심이든 정의감이든 뭐든 다 좋지만, 그게 타인의 개인정보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주식을 일정 수량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법을 근거로 199만 명(반기보고서(2023.06)에 기재된 카카오 주주 수), 566만 명(반기보고서(2023.06)에 기재된 삼성전자 주주 수)의 이름과 주소 정보를 획득한다면 그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주주명부에 기재된 해당 정보의 사용 목적은? 제가 삼성전자 주식 1주 매수하고 며칠 뒤에 삼성전자 사옥에 찾아가서 주주명부 보고 싶으니까 보여달라고 하면, 그건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는 권리인가요?
저는 사실 '왜 상법상의 권리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행사되지 않고 만만한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할까 좀 의심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대기업도 주가 떨어지는 회사 수두룩한데요, 저는 단 한 번도 소액주주가 대기업에 가처분 소송 제기하는 걸 본 적 없습니다. 주주가 주주명부 열람 등사의 목적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한, 회사는 그걸 거부하거나 그 청구가 부당하다는 걸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은 거의 99% 인용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여담으로 요즘 주주운동이 트렌드인 것 같은데, 뜻은 존중하지만 그분들은 자신들이 활동하는 게 진정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건지 혹은 특정한 누군가의 사익을 추구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보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경영권 분쟁하는 회사를 외국인 기관이 좋아할까요. 정의롭게 주주운동 한다며 명부 받아가서 지분 모으고 주주제안 하고 임시주총 열면 과연 그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주주는 그냥 주가만 오르면 되는, 적당히 이익 보고 팔고 나갈 사람들이고, 회사는 주가와 관계없이 회사의 성장과 지속을 도모해야 하는데, 뭘 해도 상관없이 주가만 오르면 되는 거라면 회사는 자기 사업에 집중할 것 없이 단기적 주가부양책에만 신경 쓰면 되는 걸까 싶습니다. 당연히 '주가관리'는 환상에 지나지 않기는 하지만요.
상법 어쩌고 주주의 권리, 그것도 중요하긴 하겠죠. 근데 세상에 상법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상법이 다른 법령에 우선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개 법령의 하나일 뿐이고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 주주니까 상법상 주주명부 열람할 권리 있는데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상법을 제외한 여타의 법령을 무시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주주명부 입수해서 혼자만 간직하는 사람 있을까요? 십중팔구 누군가와 공유하거나 그걸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겁니다. 저 파이낸셜뉴스 기사에 언급된 주주 정보가 누구에 의해 공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주체가 회사이든 회사로부터 주주명부를 입수한 누군가이든, 이미 루카스 님의 글에 명확하게 적시된 것처럼 그 자체로 굉장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주주명부가 허술하게 관리되는 회사에 과연 어느 기관'투자'자가 '투자'를 하고 싶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