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딜리버리>의 이야기는 거짓과 거짓으로 점철된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출발부터 이 이야기는 어떤 인물의 됨됨이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기 위한 목적보다는 그저 그 군상 자체를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내비친다. 이건 국내외의 수많은 희극적, 풍자적 영화들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인물이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 내지 성취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딜리버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서두에 쓴 바와 같은 한바탕 소동극을 기대한다면 곳곳에서 예상과는 어긋나는, 어쩌면 기대한 바와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홍보용 장르로는 '살벌한 공동 태교 코미디'라는 워딩을 사용하고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유쾌한 기분만 전달되기보다는 한편으로 어떤 무게감 내지 여운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딜리버리>가 포장과는 다른 이상한 내용물을 '배송'하는가 하면 그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정한 장르의 결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출산과 육아라는 소재 자체를 가벼운 방식과 톤으로만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미자-달수 부부의 서사와 귀남-우희 부부의 서사는 아슬아슬한 동거를 이어가다 후반부 어떤 지점에 이르러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충돌 내지 반환점을 맞게 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이야기는 특정한 인물에 이입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그저 한 걸음 멀리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게 만드는 데 연출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그 아이를 넘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을 때,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될 때. 매 순간 영화 속 인물들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돌아보게 된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딜리버리>는 영화 곳곳에서 점프를 거듭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의 특정한 선택을 선뜻 수긍하기 어렵거나 그 이면의 사연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인물의 자연한 동기라기보다 영화가 의도한 설정에 따라 전개되는 서사 가운데서도, 생생한 배우들의 생활 연기와 명확한 갈등 구조에 힘입어 <딜리버리>는 뒷맛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이제 좋은 이야기가 으레 그러한 것처럼, '나'라면 어떤 입장이 될지 생각해 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