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몸이 기억하는 감각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2019)

728x90
반응형

물론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떤 이야기는 그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택할 때에만 진가를 발휘하는 건 물론 관객들에게도 호응을 얻기도 한다. <라이온 킹>(2019)을 생각해볼까. 전 세계 극장 수익만 16억 달러를 넘게 거두었고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 후보로도 올랐지만, 정작 작품에 대해 평단은 물론 관객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부터 시작된 디즈니의 자사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라이온 킹> 역시 1994년작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훌륭하게 옮겨오기는 했지만 비주얼 측면에서 보이는 사실적인 면이 오히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갖가지 표정을 갖고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의 모습이, 뚜렷한 표정 없이 자연적인 동물의 형상 위에 배우들의 목소리와 노래로만 ‘이것이 <라이온 킹>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야기로 변모한 순간 흔히 말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통과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일본의 한 로봇공학자에 의해 이론과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불쾌한 골짜기’는 로봇이나 동물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 때 오히려 보는 이가 불쾌하게 느끼는 상황에 쓰인다. <라이온 킹>의 경우는 그래도 사정이 나았다. 같은 해 개봉한 <캣츠>는 더 깊숙한 골짜기로 빠지며 흥행과 평가 양면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의상을 입고 연기했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실사로 만들어져 사람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모습을 한 캐릭터들이 두 시간 동안 노래하는 광경에 극장 관객들은 싸늘하게 반응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왜 영화였을까.”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시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매체 특성상 내러티브와 사운드를 떠나서 일단 비주얼 자체로 관객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 위와 같은 사례가 발생한다. 이제 말할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도 바로 ‘감각’에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2019)는 위와 같은 면에서 애니메이션이어서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15세 이상 관람가인 애니메이션이며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은 ‘손’이다. 그냥 손도 아니고 잘린 손. 의대 혹은 병원으로 추정되는 한 건물의 냉장고 안에서 손목까지만 남은 채 비닐을 뒤집어 쓴 ‘손’이 깨어난다.

<내 몸이 사라졌다>는 손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정말 그렇게 묘사되진 않지만 손에 눈이 달려 있다고 가정해보고 그 손이 두뇌처럼 사고까지 한다고도 가정해보는 것. 냉장고를 뛰쳐나온 손은 사람의 눈을 피해 창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본능적인 것인지 특정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인지 초반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손은 특정한 곳을 향해 여정을 이어간다. 처음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비틀거리지만 다섯손가락은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사람처럼(?) 지능적으로 균형을 잡고 움직인다. 쓰레기 더미와 길 위를 지나서,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자신과 체구가 비슷한 쥐들의 위협을 만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반려견을 키우는 한 남자의 집을 거쳐 손의 여정을 여러 공간들을 만난다.

(...)

brunch.co.kr/@cosmos-j/1231

 

감각의 기억

넷플릭스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2019) 리뷰 | 물론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떤 이야기는 그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택할 때에만 진가를 발휘하는 건 물론 관객들에

brunch.co.kr

www.netflix.com/title/81120982

 

내 몸이 사라졌다 | Netflix 공식 사이트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랑을 만나는 남자. 험난한 여정 끝에 주인을 만나는 손. 그들의 삶은 아름답고도 애처롭다. 로맨스와 미스터리, 모험이 섞인 매혹적인 애니메이션.

www.netflix.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