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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메모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돌베개, 2018) 영어를 쓰면 독일어를 쓸 때보다 더 많은 사람과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은 세계에서 특정한 나라의 특정한 계층에 속한다. 또 영어로 번역한 문학도 문학 전체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므로 영어를 안다고 해도 세계의 우수한 문학을 다 읽지는 못한다. 이 사람만 존재하면 다른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어도 각각의 역사와 특성이 있는 다수의 언어가 공존하는 데 의미가 있다. (7쪽)대화는 '나는 나, 당신은 당신'처럼 서로 성채를 지킨 채 상대의 말을 참고 듣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는 이야기가 평행 상태로 진행될 뿐이고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접점이 생기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 더보기
테일러 젠킨스 레이드 소설 ‘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2023) (…) 가십 위주로 유통되기 쉬운 유명인의 이야기에 있어 우리가 진정 생각해야 할 것은 그들에게도 마땅히 삶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을 전부라 생각하고 흔히 그들이 자신과 똑같이 살며 사랑하고 느끼는 개인이라는 점을 잊는다. 유명하다는 이유로 마치 원치 않는 관심을 마땅히 감내해야만 하는 것처럼 당연시하기도 한다. 깊은 사생활까지 '알 권리'의 잣대를 들이대는가 하면 자신의 관심과 애정이 마치 유명인에게 무슨 말이든 해도 되는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처럼 착각해버리기도 한다. ⠀ 한편으로 에블린 휴고는 자신의 환경을 바꾸고 출세하기 위해 누구보다 상술한 대중들의 관심과 미디어 산업의 어떤 토대를 잘 이용한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결혼은 일종의 비즈니스처럼 계산된 면이 있었고 에블.. 더보기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메모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잘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우리 자신을 잘 믿지 못한다. 그래서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낸다고, 자존심이 너무 세다고, 혹은 야심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자책한다. 샤마는 그 시에서 자기 가족의 자존심을 이카로스에 비유한다. "보라, 우리가 하늘에 너무 가깝게 솟아올랐다가 어떻게 추락했는지. 추락이 우리를 끝장내지 못할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았을까. 여기 떨어지고, 저기 떨어지고, 비명을 지르며. 오 허세부리디지, 너희 생각만큼 나쁠 리는 없으니.""(47쪽) "이코노미석으로 비행하며 고생해본 사람은 누구나 다오의 상황에 공감했다. 언론은 다오를 "승객", "의사", "사람"으로 지칭했으며, 애초에 그의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쟁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취급됐다. 이 드.. 더보기
이치조 미사키 소설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모모, 2021) 너무 뻔한 말 같지만, 스토리텔러들은 저마다의 진심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야기에는 전하고자 하는 뜻과 마음이 있다. 어떤 이야기는 그것을 잘 전달해내지 못하고 어떤 이야기는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실패 혹은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다고 해도, 그 스토리텔러의 의도까지 폄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2020)는『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2019)에 이은 작가 이치조 미사키의 소설이다. 간단히 말하면, 발달성 난독증을 앓는 소녀와 시를 쓰는 소년이 작곡과 작사를 함께하게 되면서 생겨나는 이야기를 다룬 청춘 로맨스 혹은 멜로드라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5. 2017년에 영화로 국내 개.. 더보기
룰루 밀러의 논픽션 혹은 에세이 혹은 전기 혹은 서평,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 2021)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 찾아온 혼돈에 뒤흔들리고,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고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이 분류학자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를, 끈질김에 관한 것이든, 목적에 관한 것이든, 계속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든 내가 알아야 할 뭔가를 찾아낸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가당치 않게 커다란 믿음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18쪽) ⠀ 영화도 메시지가 좋다고 해서 그 작품도 좋은 건 아닌 경우가 많다. 오히려 좋은 의도일수록 그걸 잘 전달하기 위한 작법과.. 더보기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 목소리, 이름, 우리, 인생의 전문가 “우리가 가진 것은 목소리뿐”이란 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다른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큰 비극적인 일을 겪어도 그 비극에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부터 고민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된다. 모든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지금 겪는 일이 일시적이기를 바란다. 이 상태가 계속될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데에 그들의 희망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묻는다. 우리의 목소리로 이 사회의 무엇을 문제 삼을 것인가를 묻는다. 필요한 것이 현실에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현실, 현실, 현실... 더보기
책의 말들, 김겨울 그렇다고 해서 책이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그냥 친구 삼으면 좋다는 말이다. 친구야 하나라도 더 있으면 덜 외롭고, 게다가 책은 뭐 자기 할 일이 있어서 내 말을 들어 주기에 너무 바쁘거나 오늘 애인과 약속이 있어서 나를 못 만나거나 만날 때마다 거나하게 취해야 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같은 맥락에서 영화도, 드라마도, 유튜브도 벗 삼기 좋은 친구인 건 마찬가지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이런 영상 매체들과는 대화를 나누기가 좀 어렵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이 친구들은 내가 뭘 말할 틈을 안 주고 자기 말만 자꾸 하는 것이다. 아니 잠깐만, 잠깐만 내 얘기 좀 들어 봐, 라고 말해도 도무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간다. 나는 그게 너무 낯설어서 20대 초반까지 영화를 잘 못 봤다. 우리 이렇게 합의 .. 더보기
소설과 영화 '걸어도 걸어도' 대략적인 줄거리) 작품의 주인공 ‘료타’는 이제 막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유카리’와 함께 부모님을 뵙고 인사드리러 고향에 가는 길입니다. ‘유카리’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아쓰시’가 있고요. 고향 집에는 주인공 ‘료타’의 누나 ‘지나미’ 부부가 먼저 와 있습니다. 여기는 아이가 둘이 있고요. ‘료타’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70대 노부부가 사는 이 집은 ‘요코야마 의원’이라는 간판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노쇠해서 진료를 그만두었지만 ‘료타’의 아버지가 의사였거든요. 가족들이 여기 모인 건 이날이 ‘료타’의 형 ‘준페이’의 기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될 예정이었던 ‘준페이’는 15년 전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한 소년을 구하다가 죽었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아직 .. 더보기
박솔뫼 소설 '미래 산책 연습' 메모 "수미는 웃으며 정승의 그런 이야기를 듣다 문득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보일 때, 혹은 차 좀 우리고 올게라고 말하며 뜨거운 물을 컵 안에 따를 때, 그러다 뜨거운 김이 얼굴로 들이닥칠 때 문득 삶이 저곳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그 선명한 당연함을 그 순간 이해하게 되고는 하였다." "우리 모두는 각각 다른 사람으로 각기 다른 순간과 국면을 가지고 각자에게만 생생한 순간들을 살아가는데 우연히 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 그리고 그 자리에 친구와 다시 오게 되어서 좋다고 수미는 생각했다. 우리는 웃고 있고 우리는 웃고 있어. 정승은 웃으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고 수미는 웃으며 손을 뻗어 정승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빗나갈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정.. 더보기
장류진 작가의 새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 2021) "나는 겁이 많고, 걱정이 많고, 좀처럼 스스로를 믿지 못하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들은 나보다 씩씩하고 나보다 멀리 간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더는 나 자신을 의심하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었다."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작가의 말에서, 창비, 2019)“장편소설을 쓴 건 처음이라 많이 두근거린다. 어릴 적 과자를 먹을 때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닦지 않고 남겨둔 손가락 끝의 양념 가루들을 마지막 순간에 쪽쪽 빨면서 ‘음, 괜찮은 한봉지였어’ 생각하곤 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읽고 있는 당신도 최후의 맛을 음미하듯 ‘음, 괜찮은 한권이었어’라고 느껴주시면 좋겠다고 감히 소망해본다. 이 장을 덮고 나서 앞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더라도 그 느낌 하나만 남는다면 더는 바랄것이 없겠다고.” (장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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