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커디가 주창한 파워 포즈 이론의 내용 중, 면접과 같은 상황을 앞두고 불과 몇 분의 시간 동안 양손을 좌우로 넓게 뻗고 가슴을 펴는 것과 같은 '파워를 상징하는' 자세를 취해보는 것만으로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늘리고 코르티솔 분비를 줄인다는 실험이 있다. 몇 년 후, 불과 몇 분 동안 특정 자세를 취해보는 일이 호르몬 분비를 단기적으로 조절할 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는 게 밝혀졌다. 에이미 커디의 연구가 적은 수의 특정 표본을 대상으로 선택적인 분석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먹기에 따라 일상이, 나아가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 자체가 완전히 거짓이 되는 건 아니다.
영화의 에피소드 중 '칼'이 자살을 시도하려고 건물 외벽에 선 어떤 남자를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칼'은 생각난 노래를 불러주는데, 그게 'Third Eye Blind'의 'Jumper'라는 곡이다. 이건 임기응변이 아니라 '무조건 예스'를 외치던 '칼'이 한국어 강의도 듣고 기타 연주도 배우고 비행기 조종법도 배우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기타 연주를 하며 부른 저 노래에는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이 싫다고 해도..."라는 가사가 있다.
'예스'를 말하는 일 자체는 아무런 힘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스 맨>의 태도에 수긍할 수 있었던 건 그게 바로 크고 불확실한 행복을 조금이나마 더 확실한 쪽으로 이끌 만한 무언가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음을 먹는 일만으로는 부족하고, 우리는 항상 어떤 움직임을 (마음먹기에 따라) 행해야 한다. '칼'은 말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요컨대 크고 불확실한 행복에 다가가는 일에 필요한 건 작고 확실한 실천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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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영화] 9월호 세 번째 글은 에세이 - 거짓의 시대가 싫어도 '예스'를 말하기라는 제목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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