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7월 11일 영화의 일기 - 영화의 편식에 관하여 나름대로 다양한 장르, 국적, 소재를 아우르는 영화를 보려고 노력하지만, 본인의 취향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어서 돌아보면 '이 사람이 주로 보는 영화'라는 게 내게도 있다. 주로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즐기며 호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찾아보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 일본 영화를 보는 빈도가 늘었지만 여전히 다른 아시아권 영화나 유럽, 아랍권 영화에 대해서는 나 역시 무지에 가까울 만큼 인식의 영토가 좁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영화를 빠짐없이 다 감상해야만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아직까지는 내 대답은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다. 과연 의무감에 숙제처럼 해치우듯 보는 영화가, 순수한 이끌림으로 보는 영화만큼의 밀도 있는 감상과 그에 따른 간접체험의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더보기 5월 20일 영화의 일기 - '논-픽션'(2018)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2018, 원제 'Doubles vies')은 출판계에 종사하는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오늘날 책과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인식을 넓혀나가게 하고 동시에 지적 사유를 유도하는, 그러면서도 팽팽하고 첨예한 이야기인데, 이는 단순히 '전자책 vs. 종이책' 정도로 대답을 단순화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영화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들의 내용은 대부분 친숙하면서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거나 생각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 자체로 아주 신선하거나 기발하거나 혹은 경탄할 만큼의 어떤 통찰을 담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문화산업과 콘텐.. 더보기 3월 31일 영화의 일기 - 쓸 수 있는 데까지 쓰기 영화 리뷰 쓰기에 관한 클래스를 하면서 매시간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글은 '완벽히' 완성되는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내는 것에 가깝다는 점이다.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다."라는 폴 발레리의 말을 인용한다. 머리와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과 감정은, 생각과 감정 자체이지 그것이 언어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자 언어로 표현된 글은 내가 느낀 내 의도를 완벽하고 정확하게, 그대로 옮겨낼 수는 없다. 다만, 가능하면 그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더 좋은 단어와 문장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과정에서 글쓰기의 의의가 발견될 따름이다. 어차피 완벽한 글을 쓸 수는 없을 테니 써봐야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게 아니라, 세계의 현상을 .. 더보기 3월 21일 영화의 일기 - <우상> 에서 으로 이어지는 이수진 감독의 장편 연출 필모그래피는 이질적이다. 비교적 영화가 펼쳐내는 화두가 명확했던 에 비하면, 은 그 뉘앙스만 있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어쩌면 분명히 파악하기 어려운 일부 사투리 대사처리도 그 의도가 아닌가 여겨질 만큼).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실질적으로 총 세 번에 걸쳐 바뀌는데, 중심이 옮겨감에도 불구하고 144분을 운용하는 긴장감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건 장점이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 - 엔딩 크레딧 직전에만 나오는 - 이 직접적임에도 정작 장면, 대사, 인물의 표정 등은 흩뿌려진 채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그것이 스릴감의 한 동력처럼 보이며, 나아가 이면의 함의를 짐작하게 유도하느라 정작 세 인물이 도달하는 종착지는 해석을 강요할 뿐 그 자체로 매력적인.. 더보기 마감을 만들자!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담는 글은, 자연히 길어질수록 또렷하고 구체적이게 된다고 믿는다. 두 달 정도 써 내려가고 있는 이 영화일기는 그에 비하면 단편적인데, 적어도 내 기준 짧지 않은 글은 2천 자 이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루치의 일정량을 계속 채워가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일정 분량 이상의 갖춰진 리뷰를 쓰는 일이 줄었다. 의식적으로 긴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던 차에 무의식 중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건 '마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스스로에게 마감 기한을 부여하기. 지금 쓰는 몇 종류의 글은 그중 딱 하나를 제외하고는 업로드하는 일시가 정해져 있지 않다. 간혹 마음만으로는, 게으른 몸이 그에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다. 지.. 더보기 2월 22일 영화의 일기 - <뉴욕의 연인들>(2011) 저녁의 독서모임에 『지금 아니 여기 그곳, 쿠바』를 가져온 이가 있어 이야길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내 서가에 있는, 같은 책의 뉴욕 편을 떠올렸고 집에 오는 길에는 무엇이든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한 편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제가 'New Year's Eve'인 (2011, 국내 미개봉)은 여러 위치와 환경에서 제각기 다른 새해를 맞이하는 이들의 저마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그린다. 새해 전야를 맞아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의 풍경을 언급하는 내레이션에서 (2003)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역시 전부 열거하기 힘들 만큼 반갑고 익숙한 얼굴들이 보는 즐거움을 풍성하게 한다. 얄팍하고도 익숙한 구조와 전개를 벗어나지 않지만 어쩐지 마음을 조금 들뜨게 하는 위로를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뉴욕에 다시 갈 .. 더보기 영화이기를 넘어 문화가 되는 영화 (2018)에는 와칸다 밖을 나선 '슈리'(레티티아 라이트)가 '티찰라'(채드윅 보스만)에게 "캘리포니아에 데려간대서 뮤직 페스티벌이나 디즈니랜드 같은 곳일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영화는 언제나 동시대를 반영한다. 원작 코믹스 팬들이나 MCU 마니아들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결코 무시되어선 안 될 것은 한 영화가 자신이 만들어진 시대의 고민을 의식하고 투영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단지 한 캐릭터의 내적 성장을 넘어 그가 속한 세계의 문화를 실감 나게 그려낸 는 '마블 영화'이기 이전에 스스로가 속한 세계관만을 의식하지 않은, 잘 만든 상업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시빌 워'(2016) 이후 '티찰라'의 영화 속 행동은 하나의 캐릭터로서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특히..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