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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에서 <우상>으로 이어지는 이수진 감독의 장편 연출 필모그래피는 이질적이다. 비교적 영화가 펼쳐내는 화두가 명확했던 <한공주>에 비하면, <우상>은 그 뉘앙스만 있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어쩌면 분명히 파악하기 어려운 일부 사투리 대사처리도 그 의도가 아닌가 여겨질 만큼).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실질적으로 총 세 번에 걸쳐 바뀌는데, 중심이 옮겨감에도 불구하고 144분을 운용하는 긴장감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건 장점이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 - 엔딩 크레딧 직전에만 나오는 - 이 직접적임에도 정작 장면, 대사, 인물의 표정 등은 흩뿌려진 채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그것이 스릴감의 한 동력처럼 보이며, 나아가 이면의 함의를 짐작하게 유도하느라 정작 세 인물이 도달하는 종착지는 해석을 강요할 뿐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이야기인지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 이런 궁리를 하면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우상>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유리창, 혹은 유리벽. 그것이 아쉬가르 파라하디의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에서처럼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극장을 나섰다. 말의 전달을 가로막는 유리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보고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혹은 그대로 보지는 못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실체가 없는 것도 있다고 믿게 만들 수 있는, 착시 혹은 왜곡의 한 방편이지 않을까.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향하여 살지, 에 골몰하느라 정작 어떻게 살아갈지, 를 잊게 하는.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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