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씨네마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화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2020) 어느 날엔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나'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 말을 하기 전에 그 개요와 다음에 이어질 말 따위를 몇 가지 생각해두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자 천성이기도 했다. 상대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떡할지, 썰렁해지거나 정적이 흐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만약을 가정하는 것도 그렇고, 의도하고 예상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당황하고 식은땀이 나는 것도. 영화 (2020)의 주인공 '아드리앵'(벤자민 라베른헤)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내 세계에 갇혀 있고 산만하며 머릿속에서 딴생각을 하던 아이였다"라며 스스로에 대해 고백한 로랑 티라르 감독의 인터뷰를 보며, 어쩐지 낯설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애인이 잠시 시간 좀 갖자며 관계의 휴식을 선언한 지 38일째, 잘 지내냐는 문자를 보냈고 상대.. 더보기 슬픔 뒤의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게 만드는 풍경: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리뷰 여객선을 타고 난간에 기댄 채 멀리 절벽의 한 겹이 무너져내리는 광경을 보는 여인이 있다. 그는 지금 막 상실을 겪어내는 중이었다. 사랑을 위해 종교를 바꿀 만큼이었던. 영국과 파키스탄의 시차를 넘어, 테이프에 목소리를 담아 녹음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사랑에 진심이었던. 그런 '메리'(조안나 스캔런)는 지금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 북부 던커크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자신이 모르는 가족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 감독 알림 칸의 장편 데뷔작인 (2020)는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을 비롯한 유럽 여러 영화제에서 각광받은 뒤 국내에서는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었다. 올해에는 영국 아카데미(BAFTA)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조안나 스캔런) 수상, 작품상/감.. 더보기 영화 '피그'(2021)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성당』 (문학동네, 2014) ⠀ 요리에는 취미로도 소질로도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음식에 관해서라면 레이먼드 카버의 위 대목을 떠올린다. 원제가 ‘A Small Good.. 더보기 영화 ‘피부를 판 남자’ 리뷰 영화 (2020)는 실제 이야기에서 일부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벨기에와 영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빔 델보예(Wim Delvoye)가 한 남자의 피부에 타투를 새겨 미술관 전시에 출품하고 그의 사후에는 타투가 새겨진 피부를 액자에 보관하기로 한 계약을 맺은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 (빔 델보예는 자기 이야기가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으며 에 카메오 출연도 했다고 한다.) 를 연출한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과 제작자 필립 로기(, , 등)가 이 이야기에 주목한 것은 두 가지 화두를 모두 담아낼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어디까지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빔 델보예는 살아있는 돼지에게도 타투를 새긴 적이 있고, 물론 이는 동물권 운동가들의 비.. 더보기 "논리적인 선택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쓰기 시작한 이상 그는 계속 써야 한다 _ "논리적인 선택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Captain, there is only one logical direction in which to go: Forward!) [영화 (Please Stand By, 2017), 벤 르윈] ⠀ 다코타 패닝이 주연한 영화 (2017)는 ‘좋아하는 것에 관해 쓰는’ 영화다. 세상에,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영화도 쓰는 것에 대한 영화도 아니고 둘 다에 대한 영화라니! 자폐가 있는 ‘웬디’는 시리즈를 아주 좋아해서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상상하고 생각하고 쓴다. 우연히 본 제작사의 시나리오 공모전 포스터. 몇 날을 거쳐서 쓴 수백 장의 원고를 들고 ‘웬디’는 날이 밝기도 전 집을 홀로 나선다. (정확히는 미처 닫지 못한 문 밖으로 따라 나온 반려견 ‘피트’와 함께.).. 더보기 선댄스영화제 4관왕 화제작, 음악 영화 '코다'(2021) 리뷰 (8월 31일 개봉) 조업을 하는 아빠 '프랭크'와 오빠 '레오'를 도와 새벽 일찍 바다에 나가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비몽사몽 수업을 듣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루비'에게 어느 날 교내 합창단에 들어갈 기회가 찾아온다. 동아리 신청을 하는 시즌. 같은 학교의 '마일스'에게 순간적으로 이끌린 것인지, '루비'는 그를 따라 합창단에 들어간다. 같이 있던 친구 '거티'의 반응이 중요하다. "네가 노래를 해?" 1.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재능 사소하게 지나가는 초반부이지만 '거티'의 저 반응은 이 영화에서 '루비'가 노래를 하게 되는 이유와 직결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너 노래 잘해?", 다른 하나는 "무슨 노래 할 건데?"다. 전자는 노래 실력을 묻는 것이고 후자는 (장르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묻는 것이다. 노래와.. 더보기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여성 영화: 영화 '미스비헤이비어'(2020) 리뷰 (...) 1970년대 실화인 가 2020년대에 유효한 이유 미인대회 하면 무엇을 떠올리겠는가. 수영복만 입은 여성들은 앞뒤와 좌우로 훑으며 그들의 신체 부위 사이즈를 전자 제품의 스펙처럼 계량화 하고, 그들의 몸을 '평가'하는 대회. 좋은 심사를 받기 위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여성 참가자들을 상품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놀랍게도 1970년 미스 월드 대회는 달 착륙이나 월드컵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생중계로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미스 월드 대회의 주최 측은 사업적 수완을 발휘해 이를 패밀리 엔터테인먼트로 적극 포장했다. 물론 5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여성의 사회적 권리에 있어서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참정권 등 여성이 남성.. 더보기 단지 '실화 기반'이 아니라 역사 자체가 되는 영화: 영화 '라라걸'(2019) 리뷰 Based on a true story 영화의 각본이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각색된 것일 때, 대부분의 영화에서 'Based on a true story'라든가 'Inspired by true events' 같은 말이 서두에 쓰인다. 영화의 원작이 연극이나 소설 등 다른 매체일 경우에도 그건 마찬가지인데 이 '실화'라는 말에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가 뒤따른다. '지금 당신이 보는 이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다큐멘터리라 할지라도 연출자와 작가의 의도가 더해지므로 온전히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건 거의 대부분의 경우 무리다. 앞에서 말한 문구들이 쓰인 영화에도 크레딧 말미를 잘 보면 일부 인물이나 에피소드, 장소 등은 가공되었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붙어 있..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