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았음을 기억하기: '컨택트'(2016)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루이스’의 내레이션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를 들을 때면 영화 (Arrival, 2016)의 첫 번째 신과 마지막 신이 지금도 생생하게 스친다. 사람은 자신의 앞에 벌어질 일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알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특정한 언행이나 사건을 되돌리기를 원하는 것도 그 일이 장차 미래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를 사후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삶은 그러니까 오직 지금만 알 뿐 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언어학자인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열두 척의 ‘셸’.. 더보기 영화 '날씨의 아이'(2019) - 계절이 지나가는 기분 *영화 (2019)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 “애들이란 앞 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01, 229쪽. 가출한 소년은 패스트푸드점에서든 라멘가게에서든 아니면 작은 캡슐호텔에서든, 책 한 권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그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그 책은 자주 그의 곁에 놓여 있습니다. ‘호다카’라는 열여섯 소년이 주인공인 영화 (.. 더보기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2022) 영화 (2022)을 보고 어제 고명재 시인께 들었던 여러 이야기들이 스친다. 어떤 죽음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그 잔영을 숨 쉬고 마시며 우리는 오늘도 살아 있다. 일차적으로는 세상을 떠난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의 모습을 현재의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일도 그렇겠고, 비키 크리엡스가 연기한 엘렌이 불치의 병을 마주하며 끝내 선택하는 생에 대한 어떤 결정 또한 생과 사의 경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과 할 수 없는 일들을 모두 생각하게 만든다. "갈게"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점차 멀어지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생사를 가를 만큼 아파본 적이 없다면, 혹은 누군가를 그렇게 상실해본 적 없다면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일이 영화 속 엘렌과 마티유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렇지만 살아 있음에 대한 존엄함을 지키고자 하는 선.. 더보기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2006) 영화의 어떤 장면에 이르러, 눈 쌓인 길을 조금 걷는 것도 싫어하던 아만다는 다가온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차에서 내려 수백 미터를 (넘어지지도 않고) 달린다. 침대 위 이불과 거의 한 몸이 되거나 벽난로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게 되기 쉬운 한겨울의 날씨는 그 자체로 모두를 위축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상처와 두려움 속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달리 할 줄 알거나, 낯설고 우연한 만남 속에서도 그것이 어떤 운명적인 여정이 될 것임을 직감하는 사람에게 겨울은 혹독하지 않다. (2022.12.10.) ⠀ 이 무렵에 다시 본 낸시 마이어스의 (2006). 3년 전에는 아래와 같이 썼다. ⠀ 작중 원로 시나리오 작가 아서 에봇의 말을 조금 빌리면 (23006)는 “여행은 자신을 이야기의 주연이 되도록 만.. 더보기 우리가 진정 의심해야 할 것은 - '다우트'(2008) 본인의 판단이 결단코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 그 의심의 대상이 되는 상대의 이야기는 더 들어볼 필요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정황만을 두고 그것이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듯이. 경우에 따라 확신이 된 의심은 단지 허점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진실로부터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진정 의심해야 할 것은 자신의 생각이 반드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스스로의 판단과 경험만으로 능히 누군가를 수렁에 빠뜨리고야 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포함해서. 더보기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를 다시 보았다 배우 다케우치 유코의 비보를 듣고 영화 (2004)를 오랜만에 넷플릭스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후 영화들, 특히 나 과 같은 2010년대 다케우치 유코의 출연작들은 거의 보지 못했으므로, 내게는 가 강하고도 특별하게 기억에 있었다. 그 기억처럼 여전히 거기 있었고 흘러간 시간들처럼 새로운 모습으로도 또 거기 있었다. 좋아하는 루이스의 이 말도 괜히 한 번 떠올려보는 것이고.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영화 (2016)에서) 배우가 세상을 떠나도, 영화는 이렇게 남는다. www.netflix.com/title/80061840 지금, 만나러 갑니다 | Netflix 비의 계절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녀, 비와 함께.. 더보기 10월 17일 영화의 일기 - 82년생 김지영 무궁화호 기차 안에서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영화 개봉을 앞두고 다시 꺼내 읽었다. 오늘의 문장.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언니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 김지영 씨가 겪는 일들, 여성이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그 현실에는 수십 년, 혹은 더 오랜 기간을 뿌리 내려왔을 역사가 있다. 위의 이야기는 남아선호 사상에 바탕을 두지만, 김지영 씨가 경험하거나 전해 듣.. 더보기 동진책방 리스본_기록하기 : 책의 먼지를 털고, 손님과 이야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낯선 문지방을 넘는 일처럼 처음에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앞선다. 브런치에 어제 책방지기 첫날의 일을 호기롭게 기록했지만 오늘은 여러모로 어제와는 달랐다. 서점 안에 손님이 있지 않은 때에도 할 일은 언제나 반드시 있다. 새로 입고된 책들을 확인하고, 온라인 스토어로 들어온 주문을 보고 책 포장과 택배 예약을 하고, 누군가 물어오면 답할 수 있게 이곳저곳을 살피며 가격표나 물건들의 구색과 위치 같은 것을 본다. 서가에 책이 튀어나와 있거나 띠지가 원래 위치보다 올라와 제목을 가리거나 아니면 책의 진열이 분류나 분위기와 맞지 않게 되어 있거나, 하는 것들을 살펴 헤아린다. 먼지가 쌓여 있는 곳은 없는지 살핀다. 종이로 만져지는 책의 물성을 생각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데, 이런 것들을 그려보면서 해야할 일과 .. 더보기 7월 23일 영화의 일기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페이즈 4'가 샌디에이고 코믹콘을 통해 공개되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인종과 성별 다양성에 신경 쓰는 것이야 마땅한 거고, 그것보다 눈에 들어온 건 디즈니+를 통해 공개되는 드라마 역시 세계관에 좀 더 밀접하게 접목시킬 것이라는 점과, 무엇보다 '어벤져스'가 이번 페이즈 4에는 없다는 것이다. 앞선 MCU 영화들이 매 작품 크게 흥행할 수 있었던 요인이 개별 캐릭터 영화들을 매 페이즈마다 '어벤져스'로 규합했다는 점인데, 그건 동시에 '수퍼히어로 영화'의 한계점이기도 하다. (2019)이 흥행할 수 있었던 건 스스로의 존재보다 누적된 MCU 영화들 스물한 편의 역할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으니까. 이제 각 영화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는 것보다도 '이터널스'와 '샹치.. 더보기 7월 11일 영화의 일기 - 영화의 편식에 관하여 나름대로 다양한 장르, 국적, 소재를 아우르는 영화를 보려고 노력하지만, 본인의 취향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어서 돌아보면 '이 사람이 주로 보는 영화'라는 게 내게도 있다. 주로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즐기며 호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찾아보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 일본 영화를 보는 빈도가 늘었지만 여전히 다른 아시아권 영화나 유럽, 아랍권 영화에 대해서는 나 역시 무지에 가까울 만큼 인식의 영토가 좁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영화를 빠짐없이 다 감상해야만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아직까지는 내 대답은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다. 과연 의무감에 숙제처럼 해치우듯 보는 영화가, 순수한 이끌림으로 보는 영화만큼의 밀도 있는 감상과 그에 따른 간접체험의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