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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머문 이야기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해 읽고 이야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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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서 몇 작품을 같이하며 알게 된 모 수입사 대표님의 제안으로, 대표님의 지인께서 하시는 독서모임에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 예술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그 질문만으로 숙연해지고 경우에 따라 막막해질 수 있는 과제를 앞에 두고, 경청해주신 분들 덕에 다행히 즐거운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돌아보면 몇 가지 수확들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잘 만든 여지를 찾기 힘들지만 무려 [채식주의자]를 원작으로 한 영화 <채식주의자>(2009)가 있다는 걸 자료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됐다는 점. 소설을 어떻게 영화의 관점으로 풀이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영화의 외면화된 이미지, 소설의 내면화된 언어라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의 다른 접근법에 관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 그리고, 이 '질문하는 소설'에 관해 여러 사람들의 감상과 견해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


타인을 향한 일상화된 폭력은 단지 물리적, 신체적 위해로만 나오는 게 아니라 타인의 생각, 가치관, 행동에 관해 내려지는 모든 섣부른 판단에서 나온다. 문학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이유는 100명의 이야기에 100가지 생각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존중받아야만 함을 알기 위해서다. [채식주의자]의 '채식'은 그러니까, 깊이 뿌리내린 이 사회의 모든 폭력에 가장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단호한 저항을 결심한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 혹은 소재인 것이다.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듣는 것. 그것만으로도 많은 폭력은 사라질 수 있다.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에 수록된 시 '괜찮아'는 우는 아이를 달래는 내용인데, 마지막 연이 이렇게 마무리된다. '왜 그래, 가 아니라 / 괜찮아. / 이제 괜찮아.' 타인에 대해, 그 타인을 타인이 아니기에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나'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온당한 반응은 "왜"이기에 앞서 "어떻게"일 것이다. 혹은 나의 반응을 보이는 대신 그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일 테다. 당신이 '무슨' 사람인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당신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정답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단지 당신과 나 사이의 차이를 경이롭게 받아들이고 그 다름의 세계를 자연스럽다고 여길 수 있는 것.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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