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정서’와 ‘감성’이 다르며 ‘명징’과 ‘명확’이 다르며 ‘사용’과 ‘이용’이 다르다. 그러니 내게 ‘뜻만 통하면 된다’라든지 ‘쉬운 게 좋은 것이다’ 같은 말은 거의 절대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말 가운데 일부인데, 어떤 것과 어떤 것이 서로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운 말들이 분명 있다. 이런 궁리를 하던 중에 『우리말 어감 사전』(안상순, 유유, 2021)을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됐다.
규범적으로 어휘 사용의 맞고 틀림을 엄밀히 나누는 책이라기보다는 30년 넘게 사전을 만들어 온 입장에서 실생활에서의 말의 용례를 따져 보고 각각이 지닌 어감에 있어서의 차이를 살펴보는 책에 가깝다. 예를 들어 상대의 감정을 두고 나도 그러하다고 느낄 때 ‘동감’은 좀 더 단선적이고 ‘공감’은 좀 더 복합적이다. ‘사실’은 검증될 수 있지만 ‘진실’은 그 진위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동감은 단순히 상대와 의견이 일치하는 것을 가리키고, 공감은 의견 일치에 그치지 않고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 상대와 같은 마음이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124쪽) “사실이 ‘실제로 일어난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한다면, 진실은 ‘참되고 바른 것,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사실이 실제와의 부합에 초점이 있다면, 진실은 정직성이나 올바름에 초점이 있다.” (182쪽) 저자의 이런 서술을 읽고 나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의 수만큼 다양성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뜻을 헤아리는 일은 곧 고유함을 헤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 모든 언어와 어휘를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끔은 정확하지 않아도 느낌과 맥락을 가지고 쓰거나 쓰이는 말들도 있다. 그렇지만 언어를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도 중요한 건 알고 있거나 익숙한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완벽히 다 알고자 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 생길 때 의문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태도. 어떤 것을 어렵다고만 하지 않고 그 의미나 배경을 찾아보는 일. 간단하고 쉬운 것만 남는다면 세상에는 어떤 차이도 개성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와 같은 책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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