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가볍게 쓰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영화 마케팅과 배급 업계에 종사했기에 적어주신 내용 중 일부가 사람들에게 부정확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되어서 조금이나마 코멘트를 덧붙입니다.
1) 우선 극장 관계자는 철저히 '될 것 같다'라고 자신들이 판단하는 영화에 스크린을 편성합니다. 많이 편성해줬는데 관객 반응이 썰렁한 영화가 있고 별로 편성 안 해줬는데 좌석 판매율이 높아서 2주차 이후에 상영관을 늘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진위 통합전산망에는 아예 멀티플렉스 체인별 상영 현황이 상영관 수와 퍼센티지로 일자별로 잡히고, 매주 십수 편의 영화가 개봉하는데 특정 배급사가 특정 영화를 가지고 특정 극장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극장에 쓸 돈이면 차라리 PR과 마케팅 혹은 광고에 쓰는 게 실질적으로 훨씬 더 낫습니다.) 극장 관계자가 영화를 좋게 봤거나 관객이 잘 들 것으로 생각하는 영화에 편성을 잘해주는 것이지 뇌물이나 로비로 가능할 것 같으면, 다양성/예술 영화는 애초에 전부 살아남지 못합니다. 편성 자체를 거의 안 해줄 테니까요. 신작인 <싱크홀>에 좀 더 힘이 실린 거지 극장이 <모가디슈> 편성을 홀대하는 게 아니에요.
2) 꼭 <모가디슈>가 아니어도 잘 만들었고 규모에 상관없이 좋은 영화인데 흥행이 이상하게 잘 되지 않는 경우는 많이 봐오셨을 것 같습니다. 저도 <모가디슈>가 <싱크홀>보다 더 잘 만든 영화라는 견해에 동의하지만 일반 관객들이 외적으로 보기에 <모가디슈>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무거워 보일 수 있고 <싱크홀>이 소재 면에서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데다가 개봉 2주차가 지난 영화보다는 대체로 신작이 더 선택을 많이 받는 경향도 있습니다. 극장을 찾는 관객 규모가 많이 줄어든 걸 감안하면 <모가디슈>는 '230만 밖에 안 본 영화'가 아니라 '이 시국에 230만이나 본 영화'에 가까우니까요. 흥행과 영화의 작품성/완성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매 외 현장 판매도 적지 않은 편이고 극장에 가보면 <모가디슈>보다는 <싱크홀>의 전단지나 광고, 예고편이 좀 더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3) 여담이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프리 가이>도 좋은 평가를 많이 받는 영화임에도 관객이 다소 덜 찾고 있는데, 이것도 극장이 편성을 제대로 안 해줘서가 아니라 그만큼 일반적인 관객들이 덜 선택하는 영화인 쪽에 가깝습니다. 그건 그냥 개봉 시기에 따라 (코시국이든 성수기/비수기든) 나타나는 경향이지 배급사와 극장 간의 관계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극장과 배급사 사이에서 배급사는 철저히 을이에요. 설사 돈을 써서 그걸 상쇄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정말 정말 막대한 예산이어야 할 것이고, 많은 배급사들은 원래 쓰는 P&A 비용 외에 그런 지출을 추가로 할 여력이 안 됩니다.
4) 직배사가 아닌 한, 제작사는 위의 이야기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싱크홀>과 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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