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나 같은(?) 관객이어도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의 촬영지를 읍면동이나 카운티 단위까지 샅샅이 찾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도 <코다>(2021)도 그랬다. 두 영화는 미국 매사추세츠의 글로스터(Gloucester)의 일부 로케이션을 공유한다. (이미 쓴 브런치 리뷰에서, <코다>와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인연에 대해 잠시 언급한 바 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리'(케이시 애플렉)가 술을 마시고 주먹 다툼을 하는 곳, 그리고 <코다>에서 주인공 '루비'의 오빠 '레오'(다니엘 듀런트)가 술을 마시고 주먹 다툼을 하는 곳. 당연히 두 영화의 해당 장면에서 각각 벌어지는 물리적 충돌의 상황과 맥락은 전혀 다르고 둘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두 장소는 둘 다 'Pratty's CAV'라는 바&그릴이다. <코다>를 처음 봤을 때부터 (거의 확신에 가까운) '어, 여기 거긴데!' 싶었는데 두 번째로 보고 나니 그건 더 확실했고 구글링을 좀 하다 보니 둘이 같은 장소인 게 사실이었다.
글로스터와 맨체스터-바이-더-씨(Manchester-by-the-Sea)는 지도상 6마일 정도 거리인데, 둘 다 작은 해안가 마을이고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이나 주인공 가족이 조업을 한다는 점에서 프로덕션 측면에서는 일부나마 연관성이 있다. 그렇다면 두 영화가 다른 점은? 계절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상실로 마음을 다친 이가 보내는 혹독한 겨울에 관한 영화이며, <코다>는 섬세한 음악이 눈과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오는 여름의 영화다. 내게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속 매사추세츠는 철저히 겨울의 이미지였다. 영화의 끝에서 조금씩 눈이 녹고 겨울이 끝나가지만 기억 속에서 '리'는 여전히 겨울을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반면 <코다>는 계절적 상징들을 특정하지 않아도 서사 자체가 온통 여름의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https://brunch.co.kr/@cosmos-j/1333
'극장 밖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인질'(2021) - 오락영화의 간단하고 명민한 기획력 (0) | 2021.09.01 |
---|---|
'싱크홀'과 '모가디슈' (왓챠 코멘트) (0) | 2021.08.27 |
영화 '프리 가이'(2021) (0) | 2021.08.19 |
극한의 내전 상황 속 생존과 탈출 실화극: 영화 ‘모가디슈’(2021) 리뷰 (0) | 2021.08.14 |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2021) (0) | 2021.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