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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던 해. 처음 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서울에 살기 전에 늘 다녔던 곳 대신, 다른 미용실을 가야 한다는 거였다. 학교 근처의 몇몇 미용실을 다녀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당시 거처하던 곳 근처의 낯선 미용실을 우연히 찾았다. 모든 곳의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 해의 서울에서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낀 몇몇 장소 중 하나가 바로, 그 미용실이었다.
거처를 옮긴 지금도 난 다른 미용실을 가지 않는다. 걸어서 몇 분이던 거리가 이제는 지하철 역 네 개를 가야하는 거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교통비를 내서라도 기꺼이 간다. 그것이 벌써 8년이 지나 중간에 상호가 한 번 바뀌었다. 나를 거쳤던, 혹은 내가 거쳤던 디자이너 분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말수가 적었던 분도 있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던 분도 있다. 내 고민을 털어놓게 만든 분도 있다. 대화를 유난히 많이 나누고 친해지던 차에 결혼 준비로 미용실을 그만두게 되어 무척이나 아쉬워했던 분도 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종종 예약을 하곤 했고, 혹은 내 담당(?) 선생님(이라 불렀다.)이 계신 지 확인코자 전화를 하기도 했다. 누구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만으로 나를 알아봐주는 분들이었고, 더위를 잘 타는 나를 위해 언제나 가능한 한 시원한 자리로 안내해주고 늘 물이나 차 한 잔씩은 대접해주셨다.
지금도 미진한 내 소셜 스킬(?)이 한참이나 더 부족했던 때라 더 가깝고 살갑게 대하지는 못했던 분도 있다. 보통의 남자 손님들은 무뚝뚝한 편일 테니 무언가 이발이라는 서비스를 주고받는 그 시간 동안에도 조금이라도 대화를 하면 일에 흥도 나고 실제로 편안해하시는 모습이 보여 늘, 머리 길이가 짧아지고 가위질과 빗질이 오가는 그 찰나에도 이야기할 거리를 찾거나 생각하곤 했다. 몸에 배어 때로는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친절이라 할지라도 그 이야기의 오고감과 따뜻한 인사 한 마디에 그날의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었다.
그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처음에는 7,000원을 내던 것이 지금은 12,000원이 되었다. 그 동네는 대학생활의 절반 이상을 보낸, 나에게는 베드타운과도 같은 곳이지만 지금은 미용실을 갈 때나, 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편의점에 인사차 들르지 않는 이상 따로 찾을 일은 없는 동네가 되었다. 그동안 주변 상가에는 수많은 점포들이 들어서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만큼은 중간에 상호가 한 번 바뀌었어도, 미용사가 다른 지점으로 옮기거나 그만두거나 하여도, 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다른 어떤 설명이나 코멘트도 필요치 않고 그냥 "예쁘게(혹은 단정하게) 해주세요"라는 말 한 마디면 되는 곳. (실제로, 적어도 남자머리는 일일이 디테일하게 여기는 어떻게 해주시고 여기는 어떻게 잘라주세요 하는 것보다 그냥 예쁘게 해달라는 말 한 마디가 백 마디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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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이용하는 곳이지만 지금 내 머리를 만져주시는 분은 1년째 얼굴을 보고 있다. 이제 그 분의 쉬는 날이 언제인지를 알며, 그 분이 라식 수술을 했다는 것이나 최근에 원장님의 개가 아팠더라는 것 등을 안다. 내가 언제 왔었는지를 알며 내가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안다. 단지 시간의 흘러감과 쌓임에서 비롯되는 그 익숙함이란, 정말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힘들 정도의 강함이 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의 하나는 새로움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지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것에 대해 귀히 여기는 것도 포함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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