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썸네일형 리스트형 윤혜은, '매일을 쌓는 마음'(2024) “책방이 내가 사로잡힌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거나 가려주지는 않는다. 책방에 언제나 내가 직면한 상황이나 감정보다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책방 안쪽의 일들은 책방 바깥의 사정보다 대체로 아기자기하다. 그런 말랑한 데서 오는 힘이 있는 걸까. 업계 밖 사람들에게 책방은 낭만보다 30퍼센트의 수익으로 굴러가는 곳이라고 짠내 나게 말하지만 솔직히 내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 중 가장 푹신하다는 점에서 나를 적당히 내던지기 좋은 곳이 된다. 네모반듯한 공간에 네모난 책들로 빼곡한 책방은 의외의 탄성을 지녀서 그곳으로 들어서는 나를 매일 한 번씩 튕겨낸다.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불안한 설렘, 낯선 떨림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책방을 운영하는 해가 거듭되어도 그 ‘약간의 들뜸’.. 더보기 관객의취향의 기록 사진첩을 뒤져가며 확인한 ‘관객의취향 첫 방문일’은 2018년 7월 19일로 되어 있다. 가볼 일 없던 봉천동 현대시장입구에, 2층에 있고 책, 커피, 맥주, 와인을 판매하며 매일 영화를 상영한다고 쓰여 있는 책방의 존재. 그 해에 알던 지인이 “영화 책방이 있다”라며 추천해 준 곳이었다. 손님이 나 밖에 없었던가 아니면 한 명 있었던가.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오는 2층 곳곳을 훑다 커피와 ‘하울 정식’을 시켰다. ⠀ 다음날에는 당시 신촌에 있던 위트앤시니컬에서 이성복 시인의 강의를 들었다. 그때는 이직이 잘 되지 않아 (자주 표현하고는 하는) ‘프리랜서처럼 보이는 백수’ 생활을 하던 시기라 시간이 많았다. 그 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좋은 영화들을 만났고 서점에도 많이 갔고 낭독회나 북토크 등에도 자주.. 더보기 2021년 12월 31일 - 2022년 1월 1일, 극장칸, 강민선, 관객의 취향 이를테면 12월 31일 23시 59분의 잠금 화면과 1월 1일 0시의 잠금 화면을 나란히 찍어두는 일과 같이, 한 해의 마지막과 그다음 해의 시작 사이에서는 언제나 유난하게 마음에 축포를 울리고는 했다. 적어도 한두 해 전까지는. 이번에는 너무나 무감했고 이미 2022년이 되어 있었던 것처럼 시계에 이따금 눈길을 주었고 바깥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걸 바라봤다. ⠀ 극장 몇 군데의 상영시간표를 뒤적이다 결국 아무 데도 가지 않고 한 해 영화 기록을 돌아보고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을 꺼냈다. 넘기고 싶은 만큼만 넘기고 싶을 때는 책들을 쌓아놓고 넘길 수 있는 기운이 없을 때는 영화관에 가거나 영화를 재생하게 되는데, 오늘의 경우라면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능동적인 게 필요했다. 요즘은 할 일이나 하고 .. 더보기 2021년의 시작, 북티크에서 온 선물 연말연시는 안부를 묻기 참 좋은 핑계 같다고 누군가와 이야기했었다. 정말 그렇네. 안부를 묻는 일이 '연말이어서', '새해여서'가 아니라 '그냥 생각이 나서'나 '자주 생각하고 있어서' 묻는 안부도 있지만 여러 가지의 미력함과 일상 안팎의 일들로 그것이 빈번해지지 못하는 때가 있다. "어, 2020년이네요." 2019년 12월 31일과 2020년 1월 1일의 사이는 북티크에서 맞이했었다. 거창한 카운트다운 같은 것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야의 종 타종식을 생중계로 틀어놓기도 했으며 자정 하고도 10초 정도 지났나, 아마 위와 같이 말한 건 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가벼운 인사들이 오갔다. 불과 1년 전이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게 유독 긴 한 해를 보냈기 때문인지 정말 긴 시간이어.. 더보기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9월 온라인 클래스를 마치며 2년 동안 진행해 온 [써서 보는 영화]를 9월에는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온라인 진행을 위해 Google Meet을 처음 써봤고 프린트로 과제 출력본을 나눠 읽고 합평하는 일과 같이 평소 오프라인으로 하던 일들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느라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해보아야 했다. 4주의 시간은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여러 방식으로 응원과 격려가 되었다. 김연수의 말처럼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잘 쓰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글쓰기는 전적으로 혼자의 일이지만, 주변에 누군가가 함께 그것을 혼자의 방식으로 지속하고 있을 때, 그 사실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준다. 4주 8시간에 걸쳐 전한 이야기들이 쓰지 않던 사람을 쓰게 하고 쓰는 사람을 계속 쓰게 하는 경험이.. 더보기 동진책방 리스본_기록하기 : 책의 먼지를 털고, 손님과 이야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낯선 문지방을 넘는 일처럼 처음에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앞선다. 브런치에 어제 책방지기 첫날의 일을 호기롭게 기록했지만 오늘은 여러모로 어제와는 달랐다. 서점 안에 손님이 있지 않은 때에도 할 일은 언제나 반드시 있다. 새로 입고된 책들을 확인하고, 온라인 스토어로 들어온 주문을 보고 책 포장과 택배 예약을 하고, 누군가 물어오면 답할 수 있게 이곳저곳을 살피며 가격표나 물건들의 구색과 위치 같은 것을 본다. 서가에 책이 튀어나와 있거나 띠지가 원래 위치보다 올라와 제목을 가리거나 아니면 책의 진열이 분류나 분위기와 맞지 않게 되어 있거나, 하는 것들을 살펴 헤아린다. 먼지가 쌓여 있는 곳은 없는지 살핀다. 종이로 만져지는 책의 물성을 생각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데, 이런 것들을 그려보면서 해야할 일과 .. 더보기 북티크 서교점의 영업 종료를 며칠 앞두고 공간(空間)은, 비어 있는 것들의 사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꼭, 사람이 채운다. 3년 전 봄날의 일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책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지금은 누나라고 부르는, 어떤 분에 의해 우연히. '북티크'라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남구 학동로 105. 나는 낯선 호기심으로 찾았던 논현역 근처의 그곳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여름, 서교동에도 북티크가 생겼다. 그곳이 여는 날에도 나는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 공간의 시작을 응원했다. 어느 날 '이런 공간이 있다'는 고마운 이야기에 소중한 공간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을 새로 만났다. 이제는 스쳐간 이들도 적지 않으나, 지금껏 닿아 있는 고마운 이들도 있다. 어느 날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