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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시계 배터리를 갈았다, 50년 된 동네 금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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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 멈춘 시계를 한동안 책상 한편에 방치했다. 고장 난 시계를 거기 그냥 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하루에 두 번씩 맞는 시계의 맞는 시간을 언제로 해둘까 하다 10시 10분으로 해두었다. 시침과 분침의 간격과 둘이 이루는 각도가 어떤 안정감을 만들어 시계 광고나 카탈로그에도 가장 일반적으로 쓰인다는 그 시간.

수면 시간에 대해 말할 때 자신 있게 "늦게 자도 일찍 눈이 떠진다"라고 늘 말하고 다녔는데 요 며칠 기상 시간이 꽤 불규칙해졌다. 외부의 일정이나 다른 할 일이 없을 때도 늦어도 8시에는 눈을 떴는데, 오늘 일어난 건 고장 난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그 무렵이었다. 아빠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용돈 좀 줄까 하고. 하시면서 3분 남짓의 짧은 통화를 했고, 이어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기죽지말고열심히하거라-언젠가아들원하는데로될꺼다-항상떳떳사게살거나-힘내고".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기죽은 채로 확신도 떨어진 채로 살고 있다는 걸 무궁화호 세 시간 거리의 아빠는 읽은 것일까. 곧바로 "영주에도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하냐"라고 물으셔서 영주 롯데시네마의 상영시간표를 캡처해서 보내드렸다.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말에는 그것의 발화 자체로 어떤 힘이 있게 된다.

지금 나는 위축되어 있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경제적 형편을 걱정하는 채로 지내고 있다. 열심히 한다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건 아닌 게 세상 순리 같아서, '돈 되는 것을 하자' 같은 물질적 다짐을 하는 게 요즘의 일인데, 거기에 '기죽지말고열심히하거라'라는 문장 하나가 더해지니 11월 첫날 하루는 더 생산적으로 보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샘솟는다.

일어나서 처음 한 일은 며칠 전 라면 국물을 흘려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면바지 하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고장 난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에 다른 시계의 배터리를 교체했던 동네 금은방을 검색하니 아직 거기 있었다. 작년에도 나는 그 시계를 한동안 내버려 두었었다. '시계가 그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는 생각을 하니 정말 시계의 물성이 말하는 관념적인 시간마저도 소홀히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일단 시계부터 고치자. 움직일 채비를 했고 동네를 걸었다.

1년 6개월 전의 모습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동성사' 간판. 작년에 "지긋하신 사장님은 꼭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아르테미스의 아키라 바이크를 고쳐주던 에이치가 착용한 것 같은 부류의, 그런 확대경 하나를 눈가에 끼고 계셨다."라고 적었는데 꼭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익숙하고 노련하며 섬세한 손길로 몇 분만에 배터리를 교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 됐습니다. 얼마예요? 오천 원. (작년에는 사천 원이었는데!) 문득 궁금해져 "여기 하신 지 몇 년 되셨어요?"라고 여쭸더니 50년이라고 하셨다. 내가 산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자리에 있었다는 이 공간에 깃든 역사를 생각했다. 사람이 머문 자리에는 역사가 있다.

감사합니다. 시계에 문제 생기면 또 올게요. 이 동네에 시계방은 여기밖에 없어,라고 여전히 그 확대경을 쓴 채로 말씀하시는 사장님을 뒤로하고, 철물, 정밀, 연마, 철공, 상사, 종합, 전기 등의 단어들로 가득한 거리를 이 동네의 냄새를 맡으면서 한 번 더 걸었다.

그러니까 아직 열 시간은 남은 오늘 하루의 생각이라고 하면 '멈춰 있는 시간도 내버려 두지는 말자'와 '의욕을 가지자' 같은 것인데, 모든 일상에서 의미와 교훈을 남겨야만 한다 생각지는 않는 쪽이므로, 그냥 그랬다고 적는다. 애써 의미 두기보다 단지의 하나의 순간들을 보내기. (2019.11.01.)

 

원문: https://brunch.co.kr/@cosmos-j/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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