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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밖에서

두 사람의 달리기는 어떻게 한 사람의 차지가 되는가: 한가람 감독의 영화 '아워 바디'(2018)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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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워 바디>(2018)의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브런치에 쓴 글 중 일부를 옮겨둡니다. 전문은 아래 브런치 링크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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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으로서의 몸’을 탐구한다면 ‘자영’이 다른 이들의 몸을 바라보는 건 자신과의 비교 때문일 것이다. 동생 ‘화영’에게 교복 치마가 야하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것도 자신보다 날씬한 ‘화영’의 하체가 치마가 짧아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고, (이후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소리를 듣지만 ‘자영’은 정작 자신의 청바지를 입지 못한다) 첫 만남부터 ‘현주’의 얼굴보다도 몸 이곳저곳을 살피는 것도 달리는 사람의 몸은 달리지 않는 자신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행위로 읽힌다. 캔 맥주를 사들고 터덜터덜 계단을 오르다 중간에 멈춰 앉은 자신과, 아래로 떨어지던 캔 맥주를 잽싸게 주워 계단을 민첩하게 뛰어 올라온 ‘현주’는 너무도 달라 보였을 것이고 ‘자영’은 주워 온 캔 맥주의 흙먼지를 털어서 내미는 ‘현주’를 그저 몇 초 간 지켜본다.

동네에서 세 번째로 ‘현주’를 마주친 그날 밤 ‘현주’를 무작정 쫓아가다가 ‘자영’은 체력을 소진한 듯 신발 끈도 풀린 채 중도에 멈춰 섰다. 하지만 ‘현주’의 말처럼 “완전 초보”였던 ‘자영’은 이내 ‘현주’에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는 칭찬을 듣는다. 자신이 달린 경로와 길이 그리고 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스마트폰 앱을 ‘자영’은 신기한 듯 바라본다. ‘현주’를 뒤에서 쫓아가는 것도 벅차 했던 ‘자영’에게는 자신이 달린 행적을 누군가(스마트폰 앱)가 바라보고 이미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달리기도 누군가의 시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자영’은 그때 알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잠시 살펴보고 언급한 탐구 대상은 생식과 같은 ‘기능’으로서의 몸이 첫 번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차이’로서의 몸이라고 해보겠다. ‘자영’의 몸은 왜 ‘현주’의 몸과 다른가. 차이는 곧 변화다. 고시 공부 말고는 하는 게 없었던 사람의 몸과 달리기를 7년 넘게 한 사람의 몸이 다르다는 건 러닝 동호회 멤버 ‘민호’(최준영)가 후반부 ‘자영’과의 섹스 신에서 말하는 “노력한 만큼 몸에 변화가 나타난다”라는 것의 증명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사람의 몸에 기능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생활환경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서 타인과 구분되는 나만의 몸을 갖게 된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예컨대 ‘현주’와 정확히 똑같은 기간 동안 달리기를 했어도 전혀 판이한 생활환경에서 사는 여성의 몸은 ‘현주’와 같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유전자 등의 차이로 인해 키와 같은 신체 조건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이런 차이는 ‘아워 바디’로 ‘자영’과 ‘현주’를 함께 지칭한다 해도 ‘현주’가 죽고 난 뒤 그가 남긴 사진을 따라 ‘자영’이 같은 자세를 취하여 본다고 해도 둘이 서로 같은 몸을 가질 수는 없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몸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겠다. 어째서 그는 나와 다를까 하는 궁금증을 영영 안고서 말이다.

‘자영’이 다년간 고시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중학교 동창이 대리로 있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다는 설정은 달리기와의 비교에 알맞아 보인다. ‘현주’와 함께 대회에 나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자영’의 사진을 엄마는 한동안 바라보지만 이내 “달리기에 집중할 정신으로 뭐라도 했겠다”라고 말한다. ‘뭐라도’는 물론 그 시간에 공부와 같은 ‘현실적인’ 것을 더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지극히 실리적인 판단이 개입된 말이고 이는 엄마뿐 아니라 ‘자영’에게 처음 일자리를 주선해준 ‘민지’(노수산나)의 관점과도 비슷하다. (후에 ‘민지’는 “부럽다 너, 현실 감각 없이 사는 거.”라고 말한다.) 요컨대 <아워 바디>는 달리기를 열심히 한다고 ‘자영’이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듯이 ‘자영’이 ‘현실 감각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장면들을 자주 개입시킨다. ‘자영’의 행동에는 그래서 종종 ‘왜’가 결여돼 있거나 희미하다.

그렇다면 <아워 바디>가 육체를 다루는 시선과 탐구의 방향이 얼핏 모호하게 보이는 것은 영화 속 여러 인물들이 말하는 ‘현실 감각’에 ‘자영’이 얽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영’과 ‘현주’의 관계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럴 여지가 생기는데, 두 개의 장면 때문이다. 첫 번째는 사고로 ‘현주’가 죽은 뒤 모로 누워 있는 ‘자영’의 방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현주’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현주’는 ‘자영’에게 다가가 옆으로 나란히 눕는다. ‘자영’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현주’의 등을 아래에서부터 손으로 쓸어 올린다. 이때 영화에서 ‘자영’의 손의 움직임만큼이나 부각되는 건 ‘자영’의 손과 ‘현주’의 등이 접촉하는 순간 피부와 피부가 닿아서 만들어지는 마찰음이다. 이 소리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고 ‘현주’가 눈을 뜨는 순간 끊긴다. 두 번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앞서 ‘현주’와 술을 마시며 하던 대화 중 언급되었던 대로, ‘자영’은 고급 호텔 방에 가서 비싼 룸 서비스를 시켜 먹은 뒤 햇살이 비치는 소파에 홀로 눕는다. 이때 자위행위를 하는 ‘자영’의 모습에서 도드라지는 것 역시 ‘자영’이 자신의 몸을 쓸어내릴 때 발생하는 소리다. 이 장면 역시 영화는 그리 오래 보여주지 않고, 창밖을 보는 ‘자영’의 표정이 곧이어 <아워 바디>의 마지막 컷이 된다. 이때 ‘자영’이 누워 있는 모습과 방향은 앞서 죽은 ‘현주’가 방에 들어왔을 때 ‘자영’이 누워 있던 것과 거의 일치한다. 다시 말해 ‘현주’가 누워 있던 모습과 방향과는 여전히 반대된다. <아워 바디>의 중반과 마지막에 들어간 이 두 장면은 영화 전체를 달리 보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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