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 <애플>(2020)은 그의 필모그래피로 보나 영화의 작법과 소재를 펼치는 개성으로 보나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를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한다. 기억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우화처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인물의 기억을 상실시키는 방식으로 그것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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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정체성이 곧 기억에서 비롯한다는 관점을 지닌 영화라면, 과거를 잊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는 일은 영화 속 의사의 제안처럼 '인생을 새로 배우는' 일일까? 기억은 단지 입력된 정보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들에 관한 감정도 포함된다. 버스 내릴 곳을 잊고 특정한 노래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어떤 영화 이야기(<타이타닉>(1997))를 기억하고 이름 모를 낯선 이의 장례식을 보며 눈물 짓는 일이, 꼭 멀어지는 풍경 앞에서 그 소실점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일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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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우 감독은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케이트 블란쳇과의 연으로 이미 캐리 멀리건 주연의 다음 작품 <핑거네일스>(2022)의 제작을 확정한 상태다. 블란쳇은 베니스 오리종티 부문의 프리미어 당시 <애플>에 매료돼 직접 제작자(Executive Producer)로 나섰다. (그는 피터 브룩 감독의 "단단히 붙잡되 가볍게 놓아줘라."(Hold on tightly, let go lightly.)라는 말을 인용하며 이 영화가 말하는 기억과 삶의 관계를 평하기도 했다.) 여느 좋은 영화가 그렇듯, <애플> 역시 이야기를 끝맺기보다 그것이 계속될 여지를 남겨두는 쪽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일 것"이라고 니코우 감독 자신이 코멘트한 차기작 <핑거네일스>를 주목해보도록 만들기 충분한, 훌륭한 데뷔작이다. (5월 26일 국내 개봉, 90분, 12세 이상 관람가.)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6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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