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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밖에서

괜찮아요. 다들 잊고 사니까요. : 영화 ‘애플’(2020)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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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프닝은 몇 장의 사진 혹은 컷으로 시작된다. ‘쿵’, ‘쿵’ 하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린다. 마치 컷을 나누는 효과음처럼 들렸던 이 소리는 사실 주인공 ‘알리스’(알리스 세르베탈리스)가 벽에 이마를 부딪히는 소리다. 처음 제시되는 몇 개의 컷들은 마치 ‘알리스’가 지니고 있는 기억들의 파편처럼 다가오는데, 이는 영화 엔딩에 이르면 다시 중요해진다. 같은 이미지도 도입부에서 무방비 상태로 마주했던 것이 이 하나의 서사를 만나고 나면 같지 않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어쩌면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자연스러운 속성이리라.


집을 나선 뒤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알리스’는 잠이 들었다 종점에서 깨어난다. 버스 기사가 그를 깨우고, ‘알리스’는 자신이 어디에서 내리려고 했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애플>의 기억상실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이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있을 관객이 극장 밖에서 마주하고 있는)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과는 그 성질이 같지 않다. 감염원을 지닌 다른 누군가로부터 전염되어야 걸린다는 건 명확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지만, <애플>에서의 기억상실은 원인불명이다. 이 영화에서의 기억상실이란 ‘예고 없이’, ‘갑자기’와 같은 접두어가 어울리고 그것만이 이 질병을 설명할 수 있다.


신분증도 서류도 없이 병원에 이송되어 온 ‘알리스’에게 병원에서는 앞으로의 기억을 새로이 만들어나가는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 원인도 알 수 없고 뚜렷한 치료법도 없는 상황에서, 찾아오는 가족조차 없는 환자를 병원에서도 기약 없이 계속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신원을 만든다든지 하는 실질적인 재출발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보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가까운 것은 기억이 과연 두뇌에 저장된 정보 값으로만 존재하는 것인지 혹은 몸이 가지고 있는 감각에 해당하는 것인지를 실험하는 쪽에 가깝다. <애플>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기억과 상실을 주제로, 그 기억을 상실시키는 방식으로, 인간이 지닌 삶의 기억들이 과연 그의 정체성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에 관한 일종의 사회 실험이다. (...)

https://brunch.co.kr/@cosmos-j/1288

 

괜찮아요. 다들 잊고 사니까요.

영화 ‘애플’(2020) 리뷰 | 삶에서 생겨나는 기억들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임에도 붙잡고 있지 못하고 옅어지는가 하면 외면하거나 떨쳐내고 싶은 것임에도 그럴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영화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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