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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I’ll see you down the road.)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2020), 클로이 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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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고 있는 이 영화의 모든 순간을 빼놓지 않고 기억해두고 싶은 마음은 비단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다. 그래서 우리는 몰입하고, 그래서 우리는 집중하며, 또 우리는 메모를 하며 영화가 끝난 뒤의 잔영을 생각하고 느끼고 떠올린다. 섣불리 ‘우리’라고 칭하는 일에는 기록하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생의 어떤 순간을 붙잡아놓고자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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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순간을 빼놓지 않고 기억해두`는 일이 결코 온전히 가능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몇 번을 되풀이해서 본 영화도, 그것의 모든 컷(Cut)과 신(Scene)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복기할 수는 없다. 다만 대강의 흐름을 알고 맥락을 안다. 다만 그것이 내게 주었던 느낌을 기억한다. 그 영화를 처음 만났던 순간의 나. 그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의 나, 그리고 그 영화를 떠올리는 나. 그렇게 영화를 만나기 전과 후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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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만 하느라 생을 다 허비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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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2020)에서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밥 웰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지나온 시간들에 매여 있느라 노매드로 살면서도 정말 노매드이지 못했다는 말이다. 영화 속 모든 일들을 다 겪고 나서야 ‘펀’은 진정한 여정을 시작한다. 어떤 계절이 되면 만나고 어떤 계절이 되면 떠나가는 사람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매드’인 사람들은 영원한 안녕을 말하지 않고 언젠가의 재회를 기약한다. 아니, 기약하지는 않은 채로 기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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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지 않은 길의 어딘가 어떤 순간에 우리는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고,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고정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나날이 터전을 옮기는 사람에게 ‘랜드’(Land)가 과연 있을까 싶다가도 그들의 느슨하고도 소중한 연대가 만들어내는 존엄함은 과연 ‘노매드랜드’가 어디에든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한다는 믿음과 안도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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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를 극장에서만 세 번 봤다. 시작은 다분히 맥도먼드의 전작 중 하나인 <쓰리 빌보드>(2017, 마틴 맥도나)와 연결점을 지으려는 사적인 시도였다. 그 영화도 비슷한 시기에 네 번을 관람했다. 정식 개봉을 앞두고 기획전으로 첫 관람, 영화평론가의 해설로 두 번째 관람, 개봉 후 두 번 더 관람. 그러니까 <노매드랜드>는 지금 내게 ‘한 번 더 봐야 하는’ 영화다. 세 번에 걸친 관람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기 위한 게 아니라 반복을 통해 그것의 의미를 삶에 더 확고한 것으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네 번째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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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보다 더 많이 본 영화도 내게는 서너 편 더 있다. 그러나 그 영화들도 지금에 와 그 상세한 세부를 다 기억하라고 하면 하지 못한다. 그동안 몇 편의 영화를 더 보았으며 책이나 드라마 같은 것들은 또 어떠한지. 거창하게 인생을 논할 위치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겠으나 이런 면에서도 삶에는 새로 맞이하는 것들과 새로 떠나보내는 것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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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도 언젠가는 ‘좋은 영화를 보았다”라는 감각 정도를 남겨둔 채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영화’처럼 특별한 이 시네마의 순간과 이 경이로움도 거기 먼지가 조금씩 쌓이고 그 자리를 다른 영화들이 조금씩 대체해나가는 일을 막지는 못한다. 그런데 ‘언젠가’와 ‘다시’라는 단서가 ‘만난다’라는 말 앞에 붙는 순간. 거기에는 지금 어떤 것을 떠나보낸다는 말이 생략돼 있다. 떠나는 노매드와 그 자리에 남는 노매드가 서로 주고받는 “언젠가 다시 만나자”라는 말 앞에는 헤어짐의 순간을 감각하는 일과 재회의 순간을 예비하는 일이 동시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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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내는 일과 잊는 일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숱하게 언급해 온 다른 영화들도 내게는 “언젠가 다시 만날” 영화들이다. 문득 그 영화가 생각날 때. 혹은 그 지나간 잔영이 지금 내게 다시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것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는 달라진 의미로 다만 여전히 그때와 같은 이미지로. 그동안 떠나보내 온 수많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나는 <노매드랜드>를 언젠가 떠나보낼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만날 것이다. 그 세계로 내가 다시 찾아가거나, 혹은 그것이 나를 문득 다시 찾아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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