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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라는 영화의 제목은 <워싱턴 포스트>라는 매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단어로서 ‘Post’는 ‘우편’이기도 하고 ‘지위, 맡은 자리’이기도 하다. ‘기둥’이기도 하고 ‘게시물’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 의 뒤’라는 접두사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메릴 스트립은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인 ‘세실 B. 드밀’ 상을 받았다. 당시 수상 소감이 큰 화제가 되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말도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흔히 ‘역사가 반복된다’라고 말할 때 그 배경에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내포되어 있다. 완전하다면야 실수도 실패도 하지 않겠지만, 한다고 해도 그로부터의 성찰과 분석을 통해 같은 것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완전해질 수 없기에 매번 시행착오를 겪고 그것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포스트>와 같은 영화를 통해서도 이야기 될 때, 우리가 만나는 건 문화와 예술 역시 일정 부분 현실과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실감이다.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머릿속 상상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와 현재의 관계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는 것도 <더 포스트>가 만들어진 이유를 납득하게 한다.
<더 포스트>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줄리 & 줄리아>(2009), <유브 갓 메일>(1998),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노라 에프론(Nora Ephron, 1941-2012)을 향한 헌정 문구가 담겨 있다. 노라 에프론이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와 에이미 파스칼 등 <더 포스트>의 주역들과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노라 에프론이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 칼 번스타인(1944-)의 부인(1976-1980)이었기도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노라 에프론의 영화 <줄리 & 줄리아>에 대해서도 기록한 적 있다. 잘 드러나지도 않고 성과도 보장되지 않는 일을, 확신을 시험하는 매 순간의 어려움과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나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간이 지난 뒤 역사로 남아 생생하게 후대에 울림을 준다. 그것이 요리든 글쓰기든 영화 만들기든, 그리고 그것들에 관해 생각하는 일이든 간에. 지금 쓰는 이 ‘포스트’가 특별히 어떤 의미로 남게 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여기까지 쓰고도 <더 포스트>에 관한 생각과 감상을 턱없이 부족한 만큼밖에는 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캐서린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 써나가는 것, 그게 우리 일이죠. 안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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