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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밖에서

소설과 영화 '걸어도 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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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줄거리)

작품의 주인공 ‘료타’는 이제 막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유카리’와 함께 부모님을 뵙고 인사드리러 고향에 가는 길입니다. ‘유카리’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아쓰시’가 있고요. 고향 집에는 주인공 ‘료타’의 누나 ‘지나미’ 부부가 먼저 와 있습니다. 여기는 아이가 둘이 있고요.

‘료타’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70대 노부부가 사는 이 집은 ‘요코야마 의원’이라는 간판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노쇠해서 진료를 그만두었지만 ‘료타’의 아버지가 의사였거든요.

가족들이 여기 모인 건 이날이 ‘료타’의 형 ‘준페이’의 기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될 예정이었던 ‘준페이’는 15년 전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한 소년을 구하다가 죽었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아직 늦더위가 남아 있는 9월이고요, 오랜만에 모인 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을 해먹고, 형이 잠들어 있는 곳에 성묘를 가고, 그리고 형이 15년 전 구했던 소년인 ‘요시오’가 집에 찾아오고, 이런 하루 동안의 가족의 일상이 풍경처럼 잔잔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누군가에겐 형이었고 누군가에겐 아들이었던, 지금은 곁에 없는 가족 구성원을 저마다의 의미로 떠올리는 가족들 각자의 감정들이 대화 그리고 ‘료타’의 관찰을 통해 서술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40대 초반의 나이로 부모가 되어 나이가 든 부모를 지켜보는 주인공 ‘료타’의 내면 묘사가 작품 내내 이어집니다.

 

책과 저자 소개)

이 책은 2008년에 나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감독 자신이 소설로 옮긴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소설이 먼저 있고 영화가 그걸 원작 삼아 각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의 영화감독들 중에는 이와이 슌지, 신카이 마코토처럼 자기 영화를 소설판으로 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다큐멘터리 방송사 PD로 일했어요.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했고요.

그러다가 1995년에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환상의 빛>이라는 작품으로 장편 영화감독에 입문했고요, 국내 시장으로 보면 감독의 이름만으로 몇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거의 손에 꼽는 일본 감독이기도 합니다. 영화와 소설 <걸어도 걸어도>는 감독 자신의 경험과 관련이 깊은 작품입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에 대해 떠올리는 기억들, 생전에 뭔가 더 잘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라든지 하는 회한이나 그리움, 이런 정서가 기반이 되어 있고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라는 문장을 이 시나리오를 쓰기 전 노트에 먼저 적었다고 합니다. 속내랑 다르게 나오는 말들, 마음속에 있는데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 이런 것들이 작품 전체는 관통하는 정서와 맞닿아 있고요.

 

주요 감상)

1) 작품에서 중요한 사건은 작품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다. 분량상 중편에 해당하는 이 소설 전체가 1박 2일에 해당하는 이야기. 영화는 주인공 ‘료타’의 현재 시점에서 펼쳐지지만 소설은 이 이야기를 7년 전 과거로 만들고 현재 시점에서 ‘료타’가 그것을 회상하는 서술이 종종 개입되어 있다.

2)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세부적으로 관찰하고 관조한다. 흔히 말하는 갈등 구조나 기승전결의 흐름을 그렇게 의식하거나 따르지 않는다. 갈등을 봉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에도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작중 인물들은 거기서 그렇게 계속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 감정을 짜내거나 고조시키기보다 잔잔하고도 차분한 가운데 깊은 여운을 오래도록 남기는 방식.

3)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많은 작품들이 죽음과 상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자체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과 그 사람들이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중요하다.

 

 

책에서 인용할 부분)

 

“아버지도 어머니도 일흔을 넘겼지만, 아직 그때는 건강하실 때였다. 언젠가 그분들이 먼저 돌아가시리라는 것은 물론 알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젠가’였다. 구체적으로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는 상황을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날, 무언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른 척했다. 나중에 분명히 깨달았을 때는, 내 인생의 페이지가 상당히 넘어간 후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신 뒤였기 때문이다.” (10쪽)

 

“나중에 알았지만, 가족 모두가 모여서 사진을 찍은 것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에는 무스가 감기에 걸려서 오지 못했고, 그다음 해에는 누나네 식구 넷이서 하와이에 놀러갔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애당초 어머니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형이 죽고 없는 시점에서 이미 가족이 모두 모인 적은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77쪽)

 

“어머니가 쓰러질 때 곁에 있어 봐야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 후로 나는 몇 번이나 어머니를 끌어안고서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기까지 삼 년이 걸렸다. 이 일로부터 배운 것은, 인생에는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를 깨닫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124쪽)

 

“이날 일어났던 사건이랄 수도 없는 작은 일들을 지금도 내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가 언제까지고 옛날 그대로일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날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늙어 가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물쭈물대는 두 사람을 똑같이 우물쭈물거리며 멀리서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에는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조차 완전히 잊고, 언제나 그렇듯 두 사람의 존재를 성가시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분들과는 관계없는 나의 일상 속으로 이내 돌아와 버렸다. 부모가 늙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죽는 것도 분명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다만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줄곧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졌다.” (163쪽)

 

“"생각났다. 어제 말한 스모 선수..."
"아아 그 얘기..."라며 유카리가 싱겁게 대꾸했다.
"구로히메야마였어..."
그곳에는 이미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버스 뒤창으로 해안도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늘 이런 식이란 말이지. 꼭 한발 늦는단 말이야..."
운전수가 기어를 바꿨는지, 버스가 덜컹하면서 크게 한 번 흔들리더니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흐르는 바다는 방금 전까지 거칠었던 너울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평온하게 하늘을 비추어 푸르렀다.” (177쪽)

 

그 외 레퍼런스)

 

<걷는 듯 천천히>(문학동네, 2015)

“작가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자유를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체념적인 태도. 그리고 그런 부자유스러움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적으로 보인다고 나 스스로는 분석한다.”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어라.” 방송국 신입 사원 시절,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시청자라는 모호한 대상을 지향해 방송을 만들면 결국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는다. 어머니라도 애인이라도 좋으니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만들어라.” 즉 작품을 표현이 아닌 대화로 여기라고 그는 말했던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면 분명 작품은 문이나 창문을 열어젖힌 듯, 바람이 잘 드나들게 됩니다. 이렇게 불어온 바람은, 내가 자기표현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자기완결감’을 깨끗하게 날려줍니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지금 세 살인 딸이 열 살이 되었을 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세계는 풍요롭고, 일상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며, 생명은 그 자체로 ‘기적’인 거야, 그렇게 딸에게 말을 걸듯 만들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글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서 혹은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면서, 견디고 또 견디다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손톱을 세워 상대를 후벼 파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저 보통 사람이니까. 한 줌의 잔인함과 한 뼘의 비정함이라도 있어야 또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니까. 그래야 마침내 견딜 수 있으니까.”

“이 영화의 가족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허물기 어려운 벽을 끊임없이 재확인한다. 이들은 서로 말하지 않는 비밀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부모는 오래 전 추억을 회상하면서 장남과 차남의 행적을 혼동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취미를 오인한다. 아들에 대한 자책감과 미안함, 형에 대한 열등감과 아버지에 대한 자괴감, 사위에 대한 불신과 며느리에 대한 기피가 뒤섞여 그 작은 밥상의 1박2일은 ‘가족이어도 (혹은 가족이기에) 어쩔 수 없음’을 끊임없이 반추하게 한다.”

“이 영화는 쉬운 화합의 구두점을 끝내 찍지 않는다.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려.” 극중 어머니와 아버지가 즐기던 옛 노래 가사처럼, 걸어도 걸어도 끝내 길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인물들이 떠난 뒤의 빈 길과 마을, 그리고 바다까지를 담아내기 위해 서서히 부상하는 카메라를 밀어 올리는 것은 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자의 관조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도 길을 가야 하는 자의 안간힘이다.”

 

https://brunch.co.kr/@cosmos-j/1296

 

"저 노랑나비는 말이야..."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의 (늦)여름 | ‘료타’(아베 히로시)의 가족들이 그의 형 ‘준페이’의 기일을 맞아 모처럼 한 집에 모인다. 누나 내외와 노부모까지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지만 ‘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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