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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강의 죽음>의 '에르큘 포와로'는 마치 눈 감고도 (코난에 의해 졸면서) 모든 걸 꿰뚫는 '명탐정 코난' 속 유명한 탐정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걸 한방에 해결하는 인물이 아니다. 영화 속 범죄에는 사랑이라는 테마가 중요하게 개입되는데, '포와로'는 사랑에 대한 자기 경험을 토대로 용의자들의 감정에 대해 추리하기도 하고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의 주변인으로서 직접 발로 뛰며 스카프, 권총 등 단서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관계된 자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심문하고 그들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며,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요컨대 그는 천재적인 두뇌와 예리한 판단력을 앞세워 모든 걸 일거에 해결하는 초월적인 인물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생생히 호흡하는 관찰자이자 안내자로서 움직이는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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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케네스 브래너는 잘 알려진 고전 '덕후'이자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렬한 팬이다. <나일 강의 죽음>을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연출로 누구보다 케네스 브래너가 어울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에 수긍하게 되는데, 연출과 주연 모두를 훌륭하게 소화한 그의 스크린 안팎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관객들은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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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으로 이라크, 이집트 등 세계 각지를 누비며 자신의 이름을 명탐정으로 세계에 알린 '에르큘 포와로'를 중심으로, <나일 강의 죽음>은 갤 가돗, 아네트 베닝, 톰 베이트먼, 로즈 레슬리, 레티티아 라이트 등 전 세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활약 속에 2020년대에도 20세기의 추리극이 여전히 통한다는 걸 증명해낸다. 그건 긴장의 끈을 마지막까지 내려놓기 어려운 서스펜스를 구축해낸 연출과 각색, 호화 여객선 '카르낙 호'로 관객들을 인도하는 실감 나는 프로덕션과 시각 효과, 더불어 묘한 여운을 남기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체의 각 요소들이 조응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내게 이 영화는 마치, 우리가 여전히 극장에서 신작 영화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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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영화 <나일 강의 죽음> 리뷰 '미스터리 추리의 교과서 같은 작품' 중에서
https://brunch.co.kr/@cosmos-j/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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