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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밖에서

영화 '피그'(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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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성당』 (문학동네, 2014)

 

요리에는 취미로도 소질로도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음식에 관해서라면 레이먼드 카버의 위 대목을 떠올린다. 원제가 ‘A Small Good Thing’인 위 단편에서 빵집의 주인은 아이를 잃은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빵을 내어온다.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빵집에 들어선 부부는 저 사소한 맛을 꽤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난 내가 직접 요리를 준비한 모든 시간들을 기억해요”
영화 <피그>(2021)는 요리사를 주인공으로, 재료를 다듬고 손질해 정성을 담은 요리를 내어오는 일과 한껏 차려진 음식과 와인을 음미하는 일을 소재로,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혹은 도망쳐) 은둔하던 이가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진정 새롭게 들여다보는 과정을 관찰한다. 유명한 셰프이자 직원들이 존경하고 선망하는 인물로 살던 ‘롭’은 더 이상 아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시를 떠난 지 15년째였다. 오두막에 살며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트러플을 채취하는 은둔의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돼지가 사라지고 ‘롭’은 자기가 떠나왔던 포틀랜드에 다시 발을 들여놓아야만 한다. 단지 돼지를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떠나왔고 외면했던 가장 아픈 순간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
브런치에 쓴 영화 <피그>(2021) 리뷰 ‘상실과 슬픔을 들여다보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인생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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