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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의 말

규 챌린지 시즌 3 - 3. 취미를 소개합니다 - 취미이자 삶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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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소개하자니 딱히 스포츠나 예능에 관심도 없고, 영화 보고 책 읽고 글 쓰는 게 전부여서요(?), 바로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어떤 취미는 그것을 계속 하다 보면 곧 삶의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말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쓰는 사람.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쓰는 것이 삶의 방식이라는 건 곧 많은 일들에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무언가를 천천히 행한다는 뜻인 것 같아요.
 
저는 대학 때 영화, 정확히는 ‘영화 산업’에 관심을 갖고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회사로 예를 들면 제작사나 투자, 배급사 등이 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온 것도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온 것도 학점이 좋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 하다가 ‘블로그 같은 걸 하면 내가 영화(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뭔가를 해왔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에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 첫 글을 올렸던 것이 2013년 7월 10일의 일이었고,
 
여전히 무언가를 계속해서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영화후기’로 시작했지만 영화에 대한 리뷰와 에세이는 물론 TV시리즈, 책에 대한 글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과 감정들에 대해서도 많은 기록을 남겨왔어요. 블로그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인스타그램, 브런치가 글을 쓰는 주 채널이 되었고 관련한 외부 원고 청탁이나 모임, 강의 등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동안 개봉 영화 홍보, 마케팅과 배급 분야에 종사하기도 했었어요.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덕과 업이 일치했던 시기도 있었고, 현재는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를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다 보니 재미도 없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취미 소개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쓰는 일에 재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는 멋지고 좋은 글을 아름답고 성실한 방식으로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무엇인가를 지치지 않고 지속하는 일’ 자체가 재능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에서 처음 접했던 ‘핍진성’(逼眞性, verisimilitud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전적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는 용어인데, 김연수식으로 설명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삶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어떤 일을 "이제부터 할 거야"라고 말할 때 개연성이 있는 말이지만 핍진성이 있는 말이라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이지 실제로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반면 어떤 일을 한 10년쯤 한 사람이 "어제도 그 일 했어"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개연성은 물론 핍진성도 갖춘 말이 됩니다. 그건 한자가 내포한 의미처럼 ‘핍진하다는 건 진실에 가깝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 식대로 풀자면 글을 쓰는 것을 행하는 사람의 삶에서 진실한 건 곧 글쓰기를 하는 것, 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개연한 것에서 핍진한 것으로 향하는 다리에는 그것을 계속해서 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생각해보면 며칠이나 몇 주 정도 해본 걸 가지고 취미라 하긴 애매하고, 적어도 몇 개월에서 몇 년은 해본 것이어야 그걸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책을 보고 또 좋은 경험을 하고 나면 쓰고 싶은 게 많아집니다. 기록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은 한정적이어서 모든 순간을 다 쓸 수는 없지만, 쓰고 나면 그건 제 삶의 흔적이 되고 계속해서 남는 것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모바일과 PC, 웹과 앱의 연동을 고려해 10년이 넘게 ‘에버노트’라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습니다. 에버노트 계정에 만들어져 있는 노트의 수는 5,929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3,332개의 게시물이 있고 브런치에 1,322개의 글이 있으니 나름대로 적지 않은 기록을 해왔다고 자평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외향적인 인간도 모험심이 강한 작가도 아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보다 잘 전달하고픈 욕구와 기술적 고민을 거듭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게 됐다. 항상 감각을 열어주고 자극을 받아들이며 편견을 교정하려 애쓰게 됐다. 물론 실패할 때도 많지만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바깥 세계를 내 살갗으로 하나하나 생생하게 느끼고 해석하고픈 욕구를 갖게 됐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런 연습 자체가, 또 시도가, 내 삶을 보다 좋은 곳으로 이끌어줌을 알게 됐다. 처음엔 그저 그런 게 필요해서 시작했을 뿐인데,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내게 '글쓰기'와 '글 읽기'는 직업이거나 취미이기 이전에 삶의 방식이며 훗날 직업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존재 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김애란,  '그랬다고 적었다', 계간 『문학동네』 100호 특별부록 중에서, 2019

 

https://cafe.naver.com/r00mmate/36346

 

[규 챌린지 시즌 3] 3. 취미를 소개합니다 - 취미이자 삶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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