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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뒷모습에 드리운 그늘을 읽어내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애프터썬>의 중후반은 잘 보여준다. 의도적으로 영화가 생략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것들은 고스란히 관객 각자에게 여운처럼 다가와 짙게 남는다. 캠코더에 담긴 '인터뷰'는 영화 속 현재의 소피가 진정 아빠에게 묻고 싶었을 질문처럼 다가온다. "11살의 아빠는 지금 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이러한 언어가 다가와 감정적인 여운을 남기는 건 지금 그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인데, 마치 이 '어찌할 수 없었음'을 받아들이는 듯한 연출 하에도 지나온 시절을 향한 연출자이자 작가의 감정은 고스란히 담긴다. 그 순간을 마치 현재인 것처럼 눈앞에 되살려내려는 안간힘과 기억의 오류 내지 한계를 인정하는 무의식 중의 깨달음이 모여 끝나지 않고 계속될 이야기를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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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가 거의 20년이 지나고서야 문득 떠올리게 된 혹은 재구성한 유년의 튀르키예 여행 기록은 짧게 녹화된 홈비디오 영상을 기반으로 그 자체로 스토리텔러의 어떤 시도 혹은 의지가 집약된다. 그때 '나'(소피)는 어떤 모습이었고 그때 왜 아빠 '캘럼'의 변화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까. <애프터썬>의 이야기가 지나간 뒤 어쩌면 우리는 여운 속에서 그렇게 매듭짓지 못한 이야기, 오래도록 미련과 회한처럼 떠오른 이야기들이 남아 서사의 형태로 재구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이 소설이 된다고 한 김연수의 문장도, "소리는 엄마가 떠난 뒤에도 엄마 얼굴을 자주 그렸다. 엄마의 눈동자에 고인 빛을 표현할 땐 더 공을 들였고, 어깨선을 다듬을 땐 실제로 엄마를 쓰다듬는 것처럼 했다. 그렇게 한때 엄마였거나 여전히 엄마인 선들을 좇으며 손끝으로 엄마를 만졌다. 그런 식으로 엄마를 한번 더 가졌다."라는 김애란의 문장도 겹쳐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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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cosmos-j/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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