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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머문 이야기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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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채식주의자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22쪽)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여위는 건 채식 때문이 아니었다. 꿈 때문이었다." (23쪽)

"순간, 한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그녀의 머릿속이, 그 내부가, 까마득히 깊은 함정처럼 느껴졌다." (33쪽)

"회사에서 주선한 외식 후 사람들은 한동안 나를 미심쩍게 대했으나, 내가 성사시킨 프로젝트가 괄목할 만한 수입을 거둬내자 모든 것이 묻혀지는 듯했다." (39쪽)

"네 꼴을 봐라, 지금. 네가 고기를 안 먹으면, 세상사람들이 널 죄다 잡아먹는 거다. 거울 좀 봐라. 네 얼굴이 어떤가 보란 말이다." (61쪽)


2.몽고반점

"그것은 그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의 아내가 그 일요일 오후 그에게 아들을 목욕시켜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73쪽)

"그녀가 살았으면 하고 그는 바랐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는 의문했다.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버리려 했던 순간은 인생의 코너 같은 거였을 것이다. 아무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82쪽)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101쪽)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추운 병아리처럼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 자세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보다,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할 만큼 단단한 고독을 음영처럼 드러내고 있었다." (105쪽)


3.나무 불꽃

"의심과 경계, 혐오와 호기심이 얽힌 그들의 시선을 그녀는 익숙하게 외면한다." (152쪽)

"오랫동안 혼자여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시선으로." (152쪽)

"이제 괜찮아.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는데, 그것이 아이를 달래려는 것이었는지,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156쪽)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이곳에서 영혜는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고기를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녀는 가끔씩 이렇게 동생을 보고 가면 되는 것 아닐까." (158쪽)

"그렇게 모든 것이 ㅡ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166쪽)

"병원에 자주 드나들게 된 뒤, 그녀에게는 가끔 정상적인 인간들로 가득 찬 평온한 거리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172쪽)

"언니. ......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175쪽)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179쪽)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는 듯, 아무도 없는 병실을 살피며 영혜는 말했다.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186쪽)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192쪽)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200쪽)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214쪽)

"그녀가 이 여자를 안지 않은 것은, 영혜를 이곳에 가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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