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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을 읽으며 분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형식과 장르적인 측면 그리고 책 전반에 대한 감상의 측면에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 2021)를 떠올리기도 했다. 저자의 경험을 '어류'라는 계통 분류에 대해 지나치게 확장해서 적용한 결과 다소 치밀하지 못한 비약에 이르렀다는 인상을 받았던 바 있다. 『사람풍경』 역시 감정을 먼저 분류하고 (예: Chapter 1 - 무의식, 사랑, 대상, 분노, 우울, ... , Chapter 2 -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 ) 여행기를 거기에 접목한 책의 구성을 미루어 볼 때 저자가 매료된 정신분석 자체가 먼저이고 거기에 여행지에서의 소회를 도식적 내지 자의적으로 적용한 것이 아닐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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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저자 본인의 심리에 대한 서술은 소설가의 문장답다고 여겨지는 대목도 있었고, "끊임없이 욕망하는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존재"(337쪽)라는 인간에 대한 자조와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338쪽)임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수긍되는 면도 있었다. 사소하게는 요즘 산문집과 에세이의 경향성에 비해 훨씬 긴 호흡의 글들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의 감정을 긴 호흡의 문자언어로 풀이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어떤 글쓰기의 가치 내지 글이 갖는 힘과도 맞닿는 면이 있을 것이기도 하겠다. (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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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후기를 기록(2022.03.05.)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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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어류’라는 분류에 관해서 제기되는 책 후반부의 서술은 일면 주제의 비약 혹은 저자의 사적인 의미 부여로 다가오는 측면도 적지 않다. 우리가 알고 믿어온 것이 불변의 진리이기만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제시하지만, “어류가 조류나 포유류 등과 달리 하나의 분기군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측계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점이 사람의 직관을 틀린 것 혹은 단지 편의를 위한 것으로 전부 취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분량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비약이 있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267쪽) 과정이 비교적 충실하게 짜인 것과 달리 오히려 이론적 치밀함에는 이르지 못하는 듯 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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