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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보다 지금은 이른바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회사가 훨씬 더 많아졌다. 대부분 소액주주 집단이 상법에서 정하는 일정한 요건을 갖춰 주주총회에 특정 의안을 상정할 것을 청구하거나 임원을 대상으로 형사고발 등을 통해 회사가 자신들에게 더 신경 써 줄 것을 요구한다. 저마다 억울한 듯 화가 난 듯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분쟁을 겪은 회사에서 대외 업무를 하다 보니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의 실체에 큰 회의를 갖게 됐다. 몇 년 동안 업계 타사 IR/공시담당자들과 이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바로는 업계에서도 거의 모두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땀 흘리지 않고 사익을 추구하려는 집단이 행동주의라든가 아니면 '소액주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뒤에 숨어서 무작정 배당을 요구하거나 (회사가 유보금을 쌓아두지 않고 배당만 하면 장기적 전략 수립이나 위기 대비를 할 수 없다) 자사주 취득/소각을 요구하거나 하는 똑같은 주장들을 어느 회사에나 막무가내로 쏟아내고 있는 요즘을 지켜보면 투자자 관계, 'IR'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갖는 직무인지에 대해 무력감이 들 때도 없지 않다. 회사는 어떻게든 경영을 지속해야 하는데 그런 주주들은 밀물처럼 들어와 그냥 적당히 차익을 보면 손 털고 나갈 썰물 같고,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자신의 계좌이지 회사의 사업이 아니다. (여러분,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수한다고 그 돈이 회사로 들어오는 게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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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난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어떤 '현상'이다. 우리나라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2019년 말까지 삼성전자의 전체 주주 수는 56만 명 정도였다. 이것이 2020년 말 215만 명, 2021년 말 506만 명, 2022년 말 581만 명까지 급증했다. 카카오도 2019년 말 주주 수 12만 명에서 2023년 말에는 185만 명까지 증가했다. 그만큼 주식투자의 장벽이 낮아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근로소득이 아닌 것들로 '빨리',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실제로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순 매수액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 2020년이었다. 코로나19가 기폭제가 되었을지 예적금 금리만으로는 목돈을 마련할 수 없다는 일종의 열패감 덕분인지 '개인'들의 사정은 알 수 없겠지만 그 투자의 물결들이 모여서 결국에는 투기를 만들어냈다. 가상자산(코인)도 마찬가지다. 그건 이렇게 단기간에 쉽게 누구나 큰 이익을 낼 수 있는데 무얼 하러 그렇게 열심히 일해? 라며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을 마치 시대 흐름에 뒤처진 바보인 양 몰아가는 기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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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회사에 내가 산 가격보다 주가를 올리라고 '요구'하는 건 투자자의 당연한 '권리'인 게 아니라 내 주식 계좌에서 파란색이 아니라 빨간색을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떼쓰기나 다름없는 셈이다. 적어도 현업에서 나는 그렇게 느낀다는 뜻이다. 과연 그렇게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들이 회사에 "주가를 올려주셔서 감사하다"라고 할까? 그런 사례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주가가 오르면 그건 자기가 '투자'를 잘했거나 '종목'을 잘 고른 덕분이다. 하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그건 물론 회사가 '주가관리'를 잘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읽는 대신 '이 종목 곧 오를 거다'라고 짚어주는 유튜버 말을 믿는다. PDF로 300페이지가 넘는 사업보고서 공시를 올려도 공시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공시를 제대로 살필 능력이 없으면서 '왜 빨리 공시 안 올리냐'라고 특정 공시의 마감날에 전화를 거는 경우도 많다. 주식투자자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 능동적인 투자판단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투자자가 아니라 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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