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극장 밖에서

영화 글쓰기 클래스 '써서보는영화' 2월의 첫 날 @관객의 취향

728x90
반응형

[관객의 취향]에서 진행하는 '써서보는영화' 2월의 첫 시간이었던 오늘. 매 시간 강의자료를 준비하고 (나의 지난 글을 포함한) 참고할 만한 글을 유인물로 만들어 공유하는데, 종종 영화를 바꾸거나 글을 바꾸는 편이지만 첫 프린트의 첫 글은 계속해서 바꾸지 않고 있다. <스탠바이, 웬디>(2017)에 관해 2018년 5월 28일에 쓴 글. 글의 도입부를 시작하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며 인용한 그 글의 첫 문단은 이렇다.


"<스탠바이, 웬디>(2017)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 (긴 글을 쓰는 게 어렵다고 해서 짧은 글을 쓰는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쓴다는 건, 반드시 어려운 일이다. 문장을 짓고 단어들을 고르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자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사람인 이상 그는 계속 써야 한다. 노트에 펜이나 연필을 소리 내어 부딪히든 워드프로세서의 깜빡이는 커서를 움직이든 간에 말이다. 글쓰기가 어렵다 함은, 그것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쓰는 일에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노력을 아는 한, 누구나 쓸 수 있다.)"


글 중반에는 소설가 김연수의 책에서 한 대목을 인용해 놓았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세계는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이 병은 낫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이 불안을 모두 떠안겠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오지 않는 것인지 한 번 더 알아보겠다. 이게 현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가 아닐까. 자신의 불안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용기, 미래에 대한 헛된 약속에 지금을 희생하지 않는 마음, 다시 말해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

(김연수, 『소설가의 일』, 50쪽 중에서, 문학동네, 2014.)


글의 마무리는 이렇다.


"인용한 김연수의 글 토막 중 몇 문장은 굳이 영화 <스탠바이, 웬디>와 결부 지어 이야기할 만한 내용은 아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몇 개의 다른 문장들은 분명 '웬디'를 생각하며 떠올릴 만한 유의미한 내용이라 판단하기에 잠시 꺼내어 본다. '웬디'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아무런 수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녀가 앓는 자폐증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웬디'는 모든 불안과 미지를 기꺼이 떠안은 채 (반려견 '피트'를 안고 걸음을 떼듯이) 한 번도 건너본 적 없는 길을 건너고 가본 적 없는 장소를 향해 나아간다. '웬디'에게 중요한 건 지금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가본 적은 없는 곳이지만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것 자체일 것이다. 계속 쓰는 '웬디'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트렉'에 관해,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며, 광활하고 그 끝을 알 수도 없는 우주공간에 머리와 마음의 발을 펜과 컴퓨터에 실어 떠나는 것처럼 우리의 여정에서 중요한 건 그 과정 자체라고 믿는다.

우주의 수많은 별들 중 다른 모든 별들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은 다른 단 하나의 별을 찾고, 하나의 세계를 깊이 좋아하며 그 세계의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는 힘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애정에서 나온다. 좋아하는 것은 단지 '좋아하는 것'이지 그 이유가 필요하지 않지만, 삶의 이유와 목표를 만들어주기까지 하는 애정은 그 삶, 그 사람을 끝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다. 그런 '웬디'를 바라보면서 이 말을 문득 떠올렸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 봐" (작가 김수영의 책 제목) <스탠바이, 웬디>는 그러니까, 이야기를 다시 쓰게 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과정의 가치를 아는 영화이며, 이야기를 계속 고쳐 써 내려가는 것의 힘을 믿는 영화. 내가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영화는 대체로 그런 영화다."


나는 더 많은 당신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