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이 맡은 <범블비>는 아주 초심으로 돌아간 영화다. 범블비, 곧 B-127의 외양은 기존보다 친근감 있는 디자인으로 변모했고, 오토봇과 디셉티콘들은 훨씬 더 실사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졌으며, 무엇보다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와 범블비의 교감은 범블비의 눈을 감거나 깜빡이는 행위를 통해 직관적으로도 전달된다. 한 가지 더. 1980년대 히트곡들을 두루 포개는 선곡은 들리는 음악을 넘어 범블비의 '목소리'로 사용되며 차내 라디오의 주파수를 오가는 바늘 역시 시각적으로 눈에 띈다. 초심이라고 앞에서 언급한 것은 보고 듣는, 즉 관객에게 보이고 들리는 일차적인 것에 집중했다는 의미인데, 최대한 찰리와 범블비의 지난 이야기를 생략하고 두 캐릭터의 지금, 현재에 <범블비>는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공을 들인다. 단지 어느 인기 캐릭터의 기원을 다루는 걸 넘어 서로의 가슴 뭉클한 성장 드라마를 통해서. 반려동물을 연상케 하는, 범블비의 눈을 감는 행위는 영화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데, 모종의 일로 인해 목소리를 잃게 되었지만 자신이 찰리의 마음과 손길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자동차의 백미러에 보이는 사물이 실제로는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마음 역시 보이지는 않고 느낄 수만 있는 것이기에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도 가까이 곁에 있는 것이다. <범블비>는 그 마음을 능히 건드리는 작품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살아있다고. 자신의 잠재력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두 존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스스로를 뛰어넘는 이야기다.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영화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가치를 일깨우는 문구이기도 하다.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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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영화의 일기 - <범블비>
(...) '찰리'와 '범블비'의 관계가 스크린 밖으로 그 감정을 능히 전달하는 건 두 캐릭터가 인간과 로봇이어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로 인해 자신의 잠재력 혹은 정체성을 확인하고, 또 그것을 서로로 인해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후 '찰리'는 자신과 달리 아버지를 잊은 듯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족들의 정서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있었고, '범블비'는 기억 장치가 손상된 후 자신보다 작고 약한 인간의 손짓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 위축되어 있었다. '범블비'는 '자신을 해치지 않는' '찰리'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에서 (때마침 기억 장치가 복구됨과 함께) 달라진 눈빛과 함께 일종의 각성의 순간을 맞이한다. '찰리' 역시 '범블비'의 존재로 인하여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도 같은, 자동차를 만지고 정비하는 일의 쓸모와 보람을 찾고, 나아가 다이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부터 마음의 해방을 맞이한다.
<범블비>는 '찰리'의 방 한쪽 벽에 있는 아빠의 사진과 그 사진을 보며 아침 인사를 하는 '찰리'의 모습, 방 한편의 자동차 장난감과 피규어들을 통해 캐릭터의 성장 배경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한다. '범블비'에 대해서도 영화의 타이틀이 나오기 전 사이버트론에서의 전투 신과 '옵티머스 프라임'과의 짧은 대화 정도로 상황 설명을 대신한다. 이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와의 연관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범블비'라는 캐릭터와 '찰리'의 현재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고,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 가장 낮은 제작비(그래도 1억 3천만 달러 정도이긴 하다.)로 규모보다는 캐릭터가 매 순간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감정의 교감에 많은 공을 들인다. 마이클 베이가 제작자로 물러난 <범블비>는 북미를 포함한 글로벌 흥행 성적이 현재 2억 8,955만 달러로, 결코 적지는 않은 제작비를 생각하면 국내외에서의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파라마운트가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의욕적으로 되살려볼 수 있게 할 만큼의 성과를 거둔 걸로 볼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제가 만들고자 했던 '트랜스포머 영화'의 모습"이라고 했다. 나는 그 자신감을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범블비> 속 '찰리'와 '범블비'의 모습은 타자와의 교감이 줄 수 있는 근원적인 경이의 감정을, 그 낯선 떨림을 고스란히 느껴지게 한다. (2019.01.08.)
*영화 <범블비> 리뷰 전문: (링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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