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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밖에서

다양성을 헤아릴 줄 모르는 온라인 공간 - 왓챠 코멘트를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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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는 거의 혼자의 기록 DB용으로만 쓰지만 종종 다른 이의 반응들을 살펴보는 편인데, 코멘트에 코멘트를 남기는 기능이 생긴 이후부터 왓챠는 포털 사이트 뉴스 덧글과 별 반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어떤 영화의 코멘트에 달린 코멘트들을 보다 오랜만에 좀 깊은 짜증이 나서 그 짜증과 회의감이 적극 반영된 덧글 하나를 남겼다. 어차피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읽을 리도 읽힐 리도 없을 것일 테지만. 저렇게 적었지만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포용력과 공감 능력의 문제다. 나는 이렇게 보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리 보았을까, 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본 그 영화를 너는 겨우 그렇게밖에 못 보느냐는 비아냥이 앞서는 곳. 나한테 '객관적'으로 노잼이었으니 이걸 재밌게 본 사람은 '주관적'이거나 '알바'가 되는 곳. 이게 평점이 3.0 인 게 말이 되냐며 수만 개의 평점 전체를 '알바' 취급하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코멘트가 있었고, '영화 제대로 본 거 맞냐'는 비아냥이 있었고, 코멘트 간에는 서로 누가 더 잘났네 하는 쓸모없는 싸움이 벌어진다. 좋은 콘텐츠는 알아서 떠먹여 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문화로서 제대로 소비하고 향유할 줄 아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나는 익명성에 기댄 배설에 가까운 저 글자들까지 감상으로 인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극장이나 대중교통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행동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가벼운 언어들이겠다. 폭력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육식 대신 채식을 한다는 사람에게 그 맛있는 고기를 대체 왜 안 먹느냐며 타박하는 것도 분명한 폭력이다. 둔감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사회에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병든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수록 세상은 획일화되고 건조해진다. "'싫은 것'과 '이해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는 좋아하는 것만 이해하는 사람이 됩니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장인성, 『마케터의 일』에서) 한 문장 더 생각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내 것이 좋기 때문에 남의 것이 나쁘다가 아니라, 내 것이 나에게 좋은 만큼 다른 것은 다른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김대식,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에서)

(201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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