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성덕'을 말할 때 항상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의 원작자 어니스트 클라인을 언급하고는 했다. 어제는 거기 한 명의 이름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고 영화를 공부할 때부터 우러러보았던 감독과 함께 영화계 최대의 시상식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그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 그 감독의 이름을 언급하며 추켜세워주는 일. 그 감독의 밝은 미소와 박수를 마주하는 일.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이름과 함께 봉준호의 이름을 동시대에 적어볼 수 있어 기쁘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국가를 대표해 만드는 게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의무도 물론 없다. 나는 단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확고하게 만드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가 동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의 매 순간의 언행과 발자취가 좋을 뿐이다.
그러니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는 일이라든가,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일, 그리고 비영어권 영화 중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는 일 같은 건 어제의 일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극히 일부의 것일 따름이다.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말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속속들이 생각하고 채워갈 줄 아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너무 당연한 말인 것이다. 좋은 영화는 영화 밖에서도 영화다. 좋은 영화인 역시 현장 밖에서도 영화인이다. 좋은 이야기도 그 이야기 바깥에서도 생명력을 이어간다.
뒤늦게 시상식 중계를 보며 키아누 리브스가, 페넬로페 크루즈가, 스파이크 리가, 제인 폰다가 영화 혹은 감독을 호명하던 매 순간의 떨림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했다. 감독상 수상 소감 중 언급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한 번 더 생각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 그 말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의 출발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기생충>은 언어와 자막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바를, 시네마 그 자체가 언어라는 점을 입증한다. 더불어 이미경 부회장의 짧은 수상소감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도 그래서 끄덕거리게 된다.
어제는 <기생충>을 극장에서 함께 봤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가 작년 5월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말했다. '뭔가 대단하고 엄청난 것을 보았다'는 그때의 어렴풋한 느낌은 오늘에 와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이 되었다. (다만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만큼은 여전하게도 소수의 톱 S급 감독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국의 주류 상업영화들이 어떤 작품들이 나오는지 그 면면을 생각해보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던진 시네마에 대한 물음에 봉준호 감독이 한 가지 예시답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해본다면.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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