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있다>는 세상을 구하는 영화도 아니고 좀비의 원인을 규명하는 영화도 아니며 단지 생존의 조건에 관해 묻는 영화다. 홀로 고립된 아파트에서, 구조대가 올지 안 올지 아니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 여부조차 불명인 상황에서 사람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나. 그래서 영화에는 다양한 ‘살아있음’의 조건이 언급되거나 등장한다. 온기를 나눌 가족 혹은 타인의 존재, 먹고 마실 것,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 나 말고도 누군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기도 하며 생사를 모르는 가족이 아직 살아 있다는 희망이기도 한 동시에 이 재난으로부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그러니 좀비인 자들은 ‘한때 살아있었’지만 이제는 사람이 아닌 존재들인 것이고.
‘준우’(유아인)와 ‘유빈’(박신혜)이 서로 나누는 대화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덕분에 살 수 있었다”라는 한 사람의 말에, 자신 덕분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남기 위해 한 행동이다”라고 화답하는 한 사람의 말. 해당 장면의 전후 맥락을 보고 나면 이는 사실상 같은 말이나 다름없다. 살아남기를 넘어 살아있기를 위한 행동은 곧 누군가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공동체의 연대 같은 것을 중점에 두는 건 아니다. 그게 <#살아있다>의 장점이다. (...)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연재 [1인분 영화] 6월호 일곱 번째 글은 '살아남기가 아니라 살아있기를 위한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살아있다>(2020)에 관해 썼다. 전문은 구독자 이메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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