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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가치에 관한 짧은 생각: 어떤 행복은 크고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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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2018), <마셜>(2017), <42>(2013) 등으로 알려진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얼마 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에 영화계 관계자들과 동료는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했던 건 단지 그가 스타였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그가 출연한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는 것을 넘어 스크린 바깥에서의 직업인으로서의 면모에 호감과 매력을 느끼고 그의 커리어를 응원했다. 스타의 팬은 그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 기대감을 갖고 그것을 열렬히 함께한다.

국적을 불문하고 배우나 가수를 좋아한다는 일에 관해 말하는 건 별로 특별하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취미와 애호의 범주를 넘어 그것이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사소하게는 영감의 원천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생존 자체에 영향을 주는 영역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누군가를 죽지 않게,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과 국면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다면 어떨까.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마블 영화 팬은 죽기 전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이는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어 결국 이루어졌다. 채드윅 보스만 역시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무렵)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털어놓은 적 있다. 좋아하는 코믹스 캐릭터를 극장에서 영화로 만나고 싶었던 아이들. 그는 "저는 그들이 기대하던 순간을 살고 있었던 거예요. 그 친구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어요. 두 어린아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요."라고 했다. 엔터테인먼트는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에게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업계에 종사하는 본인의 삶에도 마찬가지의 영향을 준다.

드라마틱한 예시를 들었지만, 당장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문화와 예술의 영역이 오히려 일상생활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조차 누군가에게는 식상한 것일 수 있으나, 장기화된 팬데믹으로 인해 모두가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을 때. 온 세상이 방역과 안전에 관한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이것들은 너무나 중요하다.) 극장과 공연장은 문을 닫고 아무런 음악도 들려오지 않는 일상. 오후 아홉 시가 되면 식당과 카페는 문을 닫고 인파와 활기로 가득했던 거리는 텅 비어 있고 자영업자들은 내일을 걱정하며 마스크 너머 사람들의 표정에서 웃음기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는 세상.

그럴 때, 그런 때. 좋아하는 가수의 새로운 앨범이 발매되고,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의 새 영화가 극장에 개봉한다. 그것을 듣고, 그것을 본다. 거기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며칠만 지나면 아끼는 작가의 신간이 집으로 배송되고, 며칠만 지나면 퇴근길에 최애 가수의 새로 발매된 정규 앨범을 들을 수 있다는 그런 사소한 사실이, 거기에 이르는 그 며칠의 시간 동안 느끼는 설렘과 행복감이, 그 사람에게 기운을 주고 웃음을 준다.

레이디 가가도 테일러 스위프트도 BTS도 상을 받은 최근 MTV VMA(Video Music Awards)의 수상소감들과 라이브 공연들을 가만히 보고 듣고 있었다. 비대면과 거리두기의 시대에 문화와 예술이 줄 수 있는 이 크고 확실한 행복감, 안도감, 감사함.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이번 어워드의 공연 내내 자신은 물론 댄서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마스크를 착용한 채였던, 그리고 수상 소감(들) 중에도 의상은 바뀌었지만 마스크를 계속 쓴 채였던 레이디 가가의 Tricon Award 수상 소감을 듣고 그 내용을 옮겨두고 싶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영감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면서. 자의적으로 의역한 것이므로, 원문도 같이 아래에 적어둔다.

"스스로의 용기를 치하해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세요. 많은 사람들에게 힘든 한 해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세상에서도 용기의 커다란 승리를 봅니다. 사람들이 큰 꿈을 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오늘 이 순간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그들도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이 상을 받기까지) 한 것들을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우리가 지금 서로 떨어져 있고 문화가 활기를 잃고 위축되어 있다고 해도 저는 르네상스의 순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팝 컬처의 기운이 당신에게 영감을 줄 것이고 문화 예술의 부흥이 이 사랑과 관대함으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해 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바로 당신의 아티스트로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해요. 몸조심하시고,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세요.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제 목소리가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마스크 쓰세요. (타인에 대한) 존중의 표시입니다. 감사합니다."

("Take a moment for rewards yourself for your bravery. This has not been an easy year for a lot of people, but what I see in the world, is a massive triumph of courage. I also hope that people in home they have big dreams, I hope they see me here today and accepting this award and know how grateful I am. I want you to know that you can do this too. Just because we're separated right now and culture may feel less alive in some ways, I know a renaissance is coming, and the wrath of pop culture will inspire you, and the rage of art will empower you as it responds to hardship with its generosity and love. This is what I believe, I want nothing more than to be your artist in 2020, it's a total privilege. I love you, stay safe, speak your mind. And I might sound like a broken record, but wear a mask. It's a sign of respect. Thank you.")

소설가 김연수는 『일곱 해의 마지막』(문학동네, 2020)의 초판 한정 독자 엽서의 뒷면에 이렇게 썼다.

"잘 지내셨는지요? 오랜만의 기별입니다. 눈 드물던 겨울과 입 다문 봄 지나 벌써 뜨거운 여름이네요. 예년과 다른 여름입니다. 말 배우는 아이처럼, 우린 또 배워나갈 겁니다. 여름의 끝까지, 지치시지 말기를 바라며... 2020 여름 김연수."

우리, 부디 가을에도 지치지 않고 일상을 살아내기를.

brunch.co.kr/@cosmos-j/1108

 

문화예술의 가치에 관한 짧은 생각

어떤 행복은 크고 확실하다 | <블랙 팬서>(2018), <마셜>(2017), <42>(2013) 등으로 알려진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얼마 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에 영화계 관계자들과 동료는 물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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