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거나 습득하는 주 경로가 멜론과 애플 뮤직과 유튜브 프리미엄인 데다 대부분은 소장용으로 구입/다운로드한 MP3 파일을 기기에 넣고 듣는 편이라 음반은 잘 사지도 않고 그걸로 음악을 듣는 일은 더더욱 없다고 할 수 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로 CD 재생이 가능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수고를 들이지는 않는 것인데, 하나 둘 생겨가는 음반을 보고 있자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도 부지불식의 일인가 싶어 지기는 한다. 돌아보면 만년필을 쓴 것도 선물 받아서였고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사게 된 것도 시나리오 번역본을 읽자고 케네스 로너건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 블루레이 시나리오 박스판을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8집은 해외판으로 사고 나서 엽서와 포스터 받자고 국내 라이선스반을 후에 추가로 샀고 선물용으로 한 장을 더 사기까지 했으니, 결국 자신의 소장용으로든 선물 하기용으로든 선물 받기용으로든 어떤 세계를 넓히는 일은 알지 못하든 생각하지 못하든 간에 쉬운 일이기도 한 것이다.
유선경의 『어른의 어휘력』(앤의서재, 2020)에는 "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사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25쪽) 책 읽기 만큼이나 어떤 영역에 손을 대는 일도 결국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어떤 작품이나 대상을 사랑한다는 건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을 사랑하는 일이어서, 음반 하나와 영화 하나와 같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양해진다. 어떤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방식. 불과 몇 년 전까지 블루레이는 사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몇 년 후 DVD는 사지 않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는 DVD와 Blu-ray의 기술적 차이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영화 한 편과 그 영화를 내가 각별히 여긴다는 실감이 중요했다. 지금 이게 다 언젠가 CD플레이어를 구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그것을 합리화해두자고 쓰는 이야기다. 내 지갑 탕진 속도는 더 빨라만 질 것이고 나는 한층 더 충실한 맥시멀리스트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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