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김현,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미디어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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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에 관한 생각의 파도는 자연스럽게 잃어버려선 안 되는,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에 가닿지요. 어딘가에 잃어버린 것들이 쌓여 이룬 섬이 있다고 상상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영화나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 떠나는 항해는 결국 이러한 깨달음을 남기지요.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김현, 5쪽, 프롤로그에서)
"이 글을 쓰고 나면 저는 또다시 좋은 영화들을 찾아다니겠지만, 남은 생이 유한하고 새로운 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질 테니 보고 싶었다든지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영화의 목록의 총량은 좀처럼 차감되지 않을 테지요."
(조해진, 223쪽, 에필로그에서)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책. 영화에 관해 글을 쓸 때 그것이 리뷰나 비평이라면 대체로 그 글은 특정한 주제 의식과 일정한 논지와 흐름에 따라 연결된 내용들로 쓰인다. 반면 그것이 에세이 중에서도 편지라면 그 글은 편지의 특성상 뚜렷한 주제와 짜임새로 쓰일 때보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오가며 한 호흡이 아니거나 명확한 결론을 담지 않을 때가 많을 것이다. 전적으로 그 편지를 한 편의 글일 수 있게 해주는 건 수신인을 향한 마음이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한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해줄 이야기를 떠올리고 골라서 쓰는 글.
소설가의 문장과 시인의 문장을 통해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읽는 사람을 옆자리에 앉힌다. 아무리 가까이 앉아 있어도 영화는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 사이에서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공유될 수는 없는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수신인과 발신인을 오가며 겹겹이 이어지고 쌓인다면, 간신히 맞닿는 어떤 언어들이 남겨지지는 않을까 하고 믿게 된다. 다정한 문장들과 세상을 넓게 보는 이야기들이 만나, 오늘도 미지의 영화들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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