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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할머니를 속이는 것인가. (작중 미국에서는 이것이 불법이라는 것이 언급되기도 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은 과연 있나. <페어웰>은 이와 같은 상황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추가적인 사실들이 더 밝혀지거나 언급된다. 예를 들어 가족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할머니 '나이 나이' 역시, 과거 남편의 질병에 대해 지금 가족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했던 적이 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빌리' 역시, 자신의 커리어와 관련된 어떤 일 하나를 가족에게 '걱정시킬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는 '빌리'가 중국으로 돌아오기 전, 가족들과 나누는 식사 중 대화 장면이 짧게 지나간다. 반려 고양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처음에는 직설적으로 말했다가 '그런 충격적인 일은 너무 충격적이지 않게 천천히 혹은 돌려서 말해야 한다'라는 피드백을 받고 다음에는 또 다른 소식에 대해 "장모님이... 지붕에... 올라가셨다"라고 다르게 표현하는 이야기. '빌리'의 아빠 '하이얀'(티지 마)이 꺼내는 이 농담은 아마도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을 것이고 함께 앉아 있는 가족들은 그것을 이미 익숙한 듯이 듣고 있다.
이것은 가족이 함께 보내는 일상이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역설하는 하나의 일화가 아닐까. 듣고 또 들었던 농담을 여전히 웃으며 들어주는 일, ('빌리'의 엄마는 그것을 이미 여러 번 들은 것이어서 웃는다) 때로는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주는 일. 그것을 굳이 들추려 하지 않거나, 상대가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거나.
영화 <페어웰>에는 할머니의 폐암 발병 소식을 숨기는 일 외에 몇 가지의 '선의로 인한 거짓말'들이 더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거나 밝혀지지는 않지만, 또 다른 거짓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가령, '할머니는 정말 자신이 아픈 것을 모를까?'라든가, '하오 하오'의 결혼 상대인 '아이코'(아오이 미즈하라)는 '하오 하오'와 실제로 교제하는 사이일까 아닐까?' 같은 생각들. <페어웰>은 물론 정답을 남기지 않는다. 할머니는 다만 '빌리'에게 인생 조언 하나를 남긴다."인생이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라고.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와 누군가와 작별을 계속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살아진다는 명백한 사실보다,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진실'은 그것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 하는 일이겠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삽입된 노래 'Senza Di Te'는 Air Supply의 곡 'Without You'가 원곡이다. 'Without You'의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No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저녁과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 그런 것들은 살면서 결코 잊히지 않는 종류의 기억일 테지만, 삶의 이야기는 다만 그렇게 흘러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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