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92년으로 갑니다. 영화 승리호입니다. 뭐 이렇게 멀리 가? 2100년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2092년은 뭐야
그나저나 2092년에 뭐할 것 같으세요? 일흔한 살만 더 드시면 됩니다.
살아있을까... 그때 되면 뭐 우주 여행은 다들 가겠지.
그러니까요. 요즘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한창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하니까 오늘 TMI는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 관해서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어떤 전쟁, 모험담, 이런 것들을 주로 담고 있는데, 우주 하니까 우리나라에서 흥행한 대표적인 경우 중에 천만 영화 <인터스텔라> 같은 작품이 있지 않습니까. 헌데 우주 영화라고 해서 국내에서 다 흥행하는 것은 아닌 게 방금 말씀드린 <인터스텔라>나 아니면 <마션><그래비티> 같은 종류, 그러니까 깊은 감정선의 드라마가 대두되거나 어떤 재난의 형식을 띤 영화들을 제외하면 <스타워즈><스타 트렉> 같은 북미를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스페이스 오페라 계열의 프랜차이즈들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죠. 마블 영화 중에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경우도 두 편의 가오갤 합쳐서 간신히 400만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기본적으로 ‘덕후력’이 좀 필요한데, 한국관람객들이 이런 쪽으로 팬덤이 좀 약하거든
지금 이야기 나눌 <승리호>도 내용을 통해서 따지자면 이쪽에 해당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극장 개봉 여부를 논의하고 타진하는 과정에서 좀 더 글로벌하게 소구될 수 있는 넷플릭스행을 택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얘기를 잠시 덧붙여 보자면요. 굳이 우리말로 하면 '우주 활극'입니다. 흔히 공상과학소설을 SF라고 하는데, 사실 이런 작품을 다소 비하하는 은어에서 온 표현이라고 합니다. 말 타고 다니는 서부극을 '호스 오페라(horse opera)', 가벼운 홈드라마를 '소프 오페라(soap opera)'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줄거리 보겠습니다.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요즘은 '세계관' 이거 없으면 영화 못 만드나봐요. 마블이 배렸어...
승리호는 웹툰이 원작인데 작년 5월부터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의 프리퀄 정도로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이거 보면 영화의 배경과 인물관계도, 세계관을 좀 더 확실히 알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설정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UTS(Utopia above The Sky)라는 엄청난 기업이 등장해요. 요즘 핫한 테슬라보다 더 핫해. 이 회사가 우주에 도시 하나를 만듭니다. 부자들이 사는 곳 정도로 보면 될 것 같고, 지구인들은 끊임없이 그 도시로 밀입국을 시도합니다. 이들을 실어나르는 바로 배의 선장이 바로 김태리거든요. 이 과정에서 UTS 기동대가 성별·나이 불문하고 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살합니다. 이 기동대 소속이었던 대원이 바로 송중기. 보통 주인공은 그런 광경 보면, 정의감에 불타서 뛰쳐나오잖아요. 이분도 뛰쳐나옵니다. 벌써 약간 신파의 기운이 감돌아.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우주 배경이 승리호의 세계관이라 볼 수 있고요. SF 디스토피아 장르는 한국영화에서 흥행과는 인연이 별로 없습니다. 조작된 도시라든지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선개봉한 '사냥의 시간' 등 발상은 뛰어난데 공감을 많이 못 얻죠. 지금도 살기 힘든데 영화마저 암울해서 그럴까요?
결국 세계관이 그 자체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배경 하에서 얼마나 캐릭터와 서사를 설득력 있게 혹은 그 흥미를 단발성이 아닌 지속성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구축했느냐 하는 게 중요하게 되겠죠.
팝콘각 <서복>에서도 얘기했잖아요. 복제인간에서 솔깃해도 ‘우리가 남이가’ 뭐 이런 거 정말 안 돼요.
우주 배경이 아니어도 외화 중에서는 예컨대 <엘리시움> 같은 작품 있지 않습니까. 아예 부자들이 지구를 버리고 달처럼 지구 밖에 거주지를 만들어 거기로 다 떠나버리고 지구는 아주 황폐해진 곳인데 설정 자체도 이 <승리호>와 유사한 면이 좀 있죠. <엘리시움>은 하지만 <디스트릭트 9>으로 주목받은 닐 블롬캠프 감독의 신작으로 기대가 컸던 반면에 개인적으로는 전작에서 보여줬던 장르적인 재미는 다소 줄어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국내에서 전작인 <디스트릭트 9>보다 관객 수를 좀 더 많이 들기는 했지만요. 말하자면 외연 자체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우주 한국영화, 뭔가 좀 어색해요 근데.
'<인터스텔라> <마션> <그래비티>' 우주영화 하면 여기 나온 것처럼 하얗고 삐까뻔쩍한 스페이스수트잖아요. 근데 영화가 좀 구수한 것 같애. 찢어진 옷이랑 구멍 난 양말 주워 입고 막말하고... 인간극장 우주편이야. 아님 삼시세끼 우주편. 한국패치가 돼있어요 일단.
그 유해진 씨가 목소리 연기한, 로봇이라고 해야 하나요? 배역명은 ‘업동이’라고 나오던데 예고편에서도 아주 거기 로봇이 아니라 유해진 씨 본인이 직접 앉아 있는 것처럼 코믹하게 연출이 되었죠. 이것이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구가 그렇게 병들고 살기 어려운 곳이 되어서 사람들이 우주에서 돈 되는 거라면 뭐든지 하면서 굉장히 척박하게 살고 있다고 하면 흔히 말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스럽거나 혹은 우리가 도시적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그런 게 지구 밖에서도 유지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도 해보게 돼요. 어쩌면 크게 일종의 유머로서의 기능만이 아니라 나름대로 우주에서 살아남는다는 것과 맞물려 있기도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 그러니깐 흔히 코믹영화에서 치트키(?)로 쓰이는 사투리가 아니라 인물이 몸 담고 있는 직업이나 세계에서 나올 법한 언행이라는 거죠?
<클라우드 아틀라스> 같은 영화 보시면 서울이 한국의 수도이기만 한 게 아니라 거의 동아시아의 중심지가 되어서 한국말도 나오고 중국어 일본어 막 섞인 모습이 묘사가 되는데 사투리 같은 측면도 말씀하신 부분에서 흥미롭게 다가오는 면이 있네요.
헐리웃 우주영화가 재밌는 이유가 뭘까요?
"겁나 사실적이다" 고증이 쩔어 이건 뭐 <인터스텔라> 각본가(감독의 동생인 조나단 놀란)은 영화 시나리오 쓰려고 무려 4년간 대학에서 상대성 이론을 공부했다고ㄷㄷㄷ
반면 영화는 사실감과 간지보다는 스토리에 더 치중한 느낌이에요. "승리호 안에서 가족적인 모습이 어떻게 배어 나올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미래에는 인간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철학적인 질문을 더 많이 던져야 할 듯 싶어요." 김태리 씨 인터뷰인데 우주영화에서 이런 얘기하고 있어요. 물론 영화에서 담고자 했던 메시지였을 순 있겠지만, 그래도 우주영화잖아. 첫째는 사실감이죠. 아무리 엄청난 세계관과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CG는 디폴트에요. CG 구리면 관객들 안 본다고.
네, 요즘은 국내에서도 덱스터 같은 VFX 회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국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그런 시각적인, 기술적인 측면도 상당히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이 되는데 결국 저는 제작비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 그러니까 CG가 얼마나 소위 ‘할리우드랑 비슷하냐’ 이런 것보다 원작이 담고 있는 스토리를 영화로 얼마나 납득 가능하게 구현하거나 혹은 각색했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어져요. 아주 소위 조악하다고 할 만큼 시각적으로 보는 결과물이 눈에 띄게 별로인 경우가 아닌 한, 우리에게 좀 더 각인되는 것은 규모와 물량 면에서의 스케일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얼마나 폭넓게 짜여 있는가 하는 거죠. 물론 몇 배의 제작비가 들어간 할리우드 작품들을 통해 길들여진 관객들이 보기에 자국 영화로 만나는 우주 활극이 얼마나 만족스러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순 없겠지만요. 캐릭터의 성장과 모험담이 중심이 될지 우주 공간을 관객에게 체험시키거나 보여주는 게 중심이 될지에 따라서 우리가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CG 기술이 좋으면 내용이 없고, CG보다 내용에 충실하면 신파가 난무하고... 정말 요즘 세상은 무난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승리호의 도전에 지지를 보내고 싶은 데는 바로 이 주인공들의 직업이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승리호는 우주쓰레기청소선으로 나오죠. 그러니까 주인공들이 우주 환경 미화원이에요. 이 설정 자체가 현대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요즘 쓰레기 너무 많아요. 플라스틱 사용 줄이자고 스타벅땡에서 머그컵이랑 텀블러 사용 캠페인 벌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종이컵이 뭐야... 배달음식 시켜 먹느라 일회용품 사용이 엄청 나잖아요. 환경미화원 1명이 하루에 치워야 하는 쓰레기의 양은 대략 2톤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쓰레기가 돈이 되는 세상. 디스토피아를 묘사할 때 쓰는 화법은 바로 인류가 재앙을 자초했다는 거거든요. 영화 <그래비티> 초반의 우주 파편 시퀀스는 마치 내가 버린 쓰레기가 흉기가 돼서 나에게로 돌아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요. 미화원이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설정 또한 그런 점에서 눈이 가는 포인트입니다.
네, 영화의 영어 제목도 ‘Space Sweeper’ 그러니까 우주 청소부라는 건데 주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담은 영화들 특히 사이언스 픽션일수록 기술이나 환경에 관해서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많죠. 산업적으로 뭔가를 만들면 어쩔 수 없이 부산물, 혹은 쓰레기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후를 배경으로 한 <승리호>에서 사람들이 지구에서 살기 어렵게 된 이유가 인류 문명의 팽창으로 인한 기후 변화라든지 기타 환경 문제, 쓰레기를 포함해서, 그런 것들이 계기가 되었다면 그 자체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지구 바깥을 무대로 함으로써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라는 무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겠지요.
영화 속에서 우주미화원이라는 설정은 굉장히 잘 가져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시작되고 주인공이 가진 직업세계를 유려하게 보여주면 그만큼 몰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 스포트라이트, 조디악 등) 더군다나 우주미화원이라는 직업은 미래에 있을 법한, 가상의 직업이잖아요. 이런 거 생각없이 그냥 묘사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고. 예를 들어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영화를 보면, 미래를 예측해서 범죄를 막는 경찰조직집단이라는 설정이 있을 뿐 결국 경찰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영화 도입부에 한 범죄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쭉 보여준단 말이죠. 이런 식으로 가까운 또는 먼 미래에 있는 가상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플롯을 통해서 관객들이 전혀 이질감 없이 특정직업에 빠져들 수 있는 장치를 놓는다는 거죠.
네. 한편으로 캐릭터의 직업이 중요하지만 그게 캐릭터의 모든 것은 아닌 경우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드라마만 봐도 의사든 변호사든 누구든 다들 연애하고 그러잖아요. 드라마 얘기는 물론 지금 얘기랑 밀접하진 않은데 모든 작품들이 캐릭터의 직업에 대해 아무 세밀하게 그려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마 <승리호>에서도 우주 청소부라는, 우주 미화원이라는 것 자체는 캐릭터의 전사 혹은 현재 모습을 설명하는 것 중 일부일 것 같고 ‘도로시’라는 인간형 로봇을 둘러싼 어떤 거래라든지 음모, 이런 것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될 텐데 이 ‘도로시’라는 로봇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소소한 활극이 될 수도 있고 거의 뭐 문명을 구하는 대단한 모험이 될 수도 있으니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 간의 케미스트리도 그렇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21세기의 대중영화에 큰 팬덤 물결을 일으킨 영화가 ‘어벤져스’ 시리즈라면 20세기를 대표했던 영화는 스타워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까 얘기 나왔던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해 더 생각하자면 결국은 영화 역사적으로도 상징성이 큰 <스타 워즈> 시리즈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요. 벌써 40년이 넘었죠. 타투인 행성 출신의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가 갤럭틱 엠파이어, 은하 제국에 맞서는 레벨 얼라이언스, 반란 연합군에 가담하게 되는 이야기잖아요. 지금 이렇게 말하기에도 워낙 거친 요약일 만큼 방대한 세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세계관이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그에 관한 2차 창작물이라든지 팬덤을 양산하고 거대한 프랜차이즈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그 작품이 묘사하는 세계가 얼마나 크고 방대한지 그 규모보다는 결국 캐릭터의 매력에 달려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승리호>의 주연인 송중기 씨는 이미 조성희 감독의 전작인 <늑대소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 바 있고 이번이 감독과 다시 협업하는 작품이 되겠죠. 김태리, 진선규, 이런 좋은 배우들이 소화한 캐릭터들이 이 모험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가, 물론 지금 벌써부터 <승리호>의 속편 제작이나 시리즈화를 말씀드리는 건 전혀 아니고요, 작품의 매력도를, 오래 사랑받고 기억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결국 승리호는 캐릭터의 선택과 집중이 관건이었다고 봐요. 팝콘각 <도굴>편에서 얘기했었지만 저마다 사연있는 캐릭터와 그들 간의 이합집산이 볼거리를 선사하게 되겠고요. 덧붙여서 <스타워즈>는 기본적으로 신화적인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잖아요. 악의 힘에 의해 잠식돼서 타락한 악당 다스베이더를 평범한 인물 루크 스카이워커가 비범한 현자 요다의 가르침으로 각성해서 절대악을 응징한다. 그 속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도 찾아볼 수 있고요. 승리호에서 신화적 모티브까지 바라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저는 적어도 하나의 세계관을 다룰 때 원형적인 스토리를 깔고 캐릭터들이 무대를 휘젓고 다녀야지, 무조건 우주영화라고 해놓고 ‘선수 들어갑니다’ 뭐 이런 대사 난무하고 저들끼지 쿨한 척 하느라 바쁘면 낯간지러워서 못 봐요.
사실 <스타워즈>도 이번에 ‘깨어난 포스’부터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까지 새로 나왔던 삼부작이 이전 스타워즈랑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스토리는 아니잖아요. ‘제국의 역습’이나 ‘제다이의 귀환’ 같은 작품들의 잔영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익숙한 구조를 따르면서도 캐릭터의 뒷 이야기를 추가한다든지 함으로써 아직도 ‘스타워즈’ 세계관에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증명했습니다.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라든지 [만달로리안] 같은 스핀오프도 만들어졌거나 제작 중이기도 하죠. 이게 다 조지 루카스 아저씨가 1977년에 기가 막힌 작품 하나 내놓은 덕에 이만큼 확장된 거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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