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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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해버리면 편할 것을, 굳이 글로서, 글로써 쓰는 일은 괴롭습니다. 머리와 손을 써야 하는 육체 노동이며, 단어와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드는 문장 노동이며, 말보다 훨씬 그 속도가 느리기까지 합니다. 기껏 고생해서 몇 자 적어봐야 읽는 사람은 한정돼 있습니다. 원고지 두어 장 남짓의 단문에도 요즘 사람들은 ‘길다’고 그걸 내려버립니다. 유튜브 영상들의 썸네일과 제목은 더 자극적이고 현혹적이며,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사’들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조회 수,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말 써가며 글로 만드느니 사진이나 영상으로 할 말 전하는 게 훨씬 더 간편하고 때로는 효과적일 때도 있을 텐데. 우리는 왜 굳이 글을 쓸까요, 조금 더 힘주어 말해, 왜 글을 써야만 할까요. 저에게는 지금처럼 무언가를 메모하고 끼적이며 쓰고 또 쓰는 일이 일상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에, 우리의 첫 만남부터 저는 ‘영화에 대해 글을 왜 쓰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하고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다행히, 잘 들어주시고 끄덕여주셔서 안도했습니다.
강의 중 제가 인용한 장석주의 책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는 전 세계의 여러 글쓰기 고수들이 정리한 비법이나 노하우 같은 것을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저도 잘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바버라 애버크롬비라는 사람이 정리한 ‘작가와 고양이의 닮은 점’이라는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1. 계속 집중한다. 2.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3. 조용히 사냥한다(즉, 기록한다). 4. 독립적이다. 5. 가만히 말없이 오랜 시간을 버틴다. 어때요, 수긍이 가시나요? 무엇보다 조용히, 독립적, 오래, 계속, 그런 단어들이 저를 잡아끕니다. 말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니,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내 말을 누군가 즉각적으로 들어주기라도 하지, 글을 쓰는 일은 철저히 혼자의 행위라고 저는 믿습니다. 앞서 유튜브 이야기도 했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영화 리뷰 같은 걸 써봐야 내게 명확한 이득이 즉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도 어려우며 그 가운데서도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의외로 꽤 많습니다. 서점에는 매일, 매주 신간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조금 이야기가 옆길로 돌았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책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먹고 살기 위해 처리해야 할 바쁜 것들이 많은데, 한낱 문학이나 엔터테인먼트가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에 관해서인데요,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우리가 보낸 순간 - 시』, 마음산책, 2010, 287쪽) 정말 읽고 쓰는 것만으로 우리는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5년이든, 10년이든, 계속 쓴다면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김연수 작가는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더 달라진다.”(『우리가 보낸 순간 - 소설』, 마음산책, 2010, 221쪽)
그럼에도 ‘써서 보는 영화’라는 뭔지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 모임 이름에다가, 전문 강사이거나 유명한 사람도 아닌 저의, 첫 시간부터 한다는 소리가 “이 시간이 여러분을 글쓰기 고수로 만들어준다고 보장하지는 않습니다.”였던, 이 네 번의 자리에 선뜻 시간을 내어준 여러분이 있어 저는 이 글에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습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건 나름대로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걸 시작하는 것에도, 또 마무리하는 것에도, 능숙하지 못합니다. 항상 헤매고 종종 막연히 골몰하며 많은 경우 이게 최선인 건가 거듭 고민합니다. 저는 원래 준비를 빨리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여차여차 준비를 마치더라도 그게 제대로 된 건가 몇 번을 더 돌아보곤 하는 사람이어서 말이에요. 그러니 이 모임이 9월 7일 첫 시간부터 바로 오늘, 9월 28일까지 네 번에 걸쳐 무사히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 덕분입니다. 제 이야기가 언제나 공감되고 언제나 마음에 닿기만 한 것은 분명 아니었을 텐데, 곁에서 시간을 함께해주시는 것만으로 제게는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깊이 고맙습니다. 4주의 시간, 짧은 만남이지만 여러분 덕에 많이 배웠고 많이 행복했으며, 또 많이 고마웠습니다. 가능한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이 계속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그럴 것이고요. (2018.09.28.)
*관객의취향 영화 글쓰기 모임 '써서 보는 영화' 9월반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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