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것은 목소리뿐”이란 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다른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큰 비극적인 일을 겪어도 그 비극에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부터 고민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된다.
모든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지금 겪는 일이 일시적이기를 바란다. 이 상태가 계속될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데에 그들의 희망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묻는다. 우리의 목소리로 이 사회의 무엇을 문제 삼을 것인가를 묻는다. 필요한 것이 현실에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현실, 현실, 현실. 하지만 우리도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언제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목소리로 무슨 변화를 만들었는가? 당신 목소리로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가? 과연 우리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해낼 수 있다. 눈만 뜨면 소비자로 살아가느라 바쁜 우리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만드는 존재, 창조적인 존재란 점이다. 창조적인 과정에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힘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헤더가 말한 “나는 내 인생의 전문가”란 말의 의미다. 잭과 헤더는 어둠을 창조적으로 이용했고 무력감을 뚫고 삶을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슬픔 속에서도 자기 삶을 살 수 있다”라는 말은 슬픈 일을 겪었지만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이것이 좋은 이야기다.”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230쪽 (위고,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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