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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주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관객들에게 풍부한 감정을 심어줄 수도 있고 그들이 조금 덜 외롭다고 느끼게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힘은 또한 파괴적인 방식으로 쓰일 수도 있고, 현상 유지(status quo)에 대한 도전의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진실을 자파르 파나히만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Lisa Laman, Collider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란의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2010년 자국의 사회문제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가 정부에 대한 비판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20년 동안 영화 제작을 금지하는 조치를 당했다. 뿐만 아니라 해외 출국도 자신의 영화에 대한 인터뷰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No Bears + Jafar Fanahi + interview'라고 무심코 구글 검색창에 입력해 외신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는 그러한 상황마저도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을 시도하기도 했다. 사법 당국으로부터 상술한 바와 같은 처분을 당하고 아직 2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제79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노 베어스>(2022) 또한 환경의 제약 속에서 오히려 그 환경을 이야기에 적극 투영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자파르 파나히의 신작이다.
시내의 한 카페에서 주문을 받던 자라는 걸어오는 박티아르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간다. 두 사람은 지금 이웃나라로 도피할 궁리 중인 연인이다. 프랑스 여성의 신원을 한 여권.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여권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며 상대에게 먼저 떠나라고 하고, 여성은 함께가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고 돌아선다. 이것은 영화다. 잠시 뒤 점차 멀어지는 프레임은 관객이 조금 전까지 본 장면이 '촬영 중인 영화'의 한 신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자파르 파나히는 컴퓨터로 현장을 모니터링하며 비대면으로 디렉팅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인터넷 연결이 끊기고, '영화'로부터의 몰입을 깨고 냉혹한 삶의 현장으로 이끌듯 감독의 카메라가 담는 건 전화기를 들고 하늘을 향해 이리저리 손을 뻗어 네트워크 신호를 찾는 스스로의 궁색한 모습이다.
자파르 파나히가 있는 곳은 튀르키예와 마주한 이란 국경지대의 한 마을이다. (영화 밖 스스로의 처지와 같이) 출국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최대한 촬영 현장과 가까이 있기 위해 테헤란을 벗어나 국경지대로 왔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비대면 방식으로 촬영 현장에서의 디렉팅을 수행하고, 촬영본이 담긴 하드디스크 등을 이따금 받아서 보는 일이다. 스태프의 제안에 밀수꾼들이 오가는 비포장도로를 통해 국경선을 밟았다가도, 자신이 밟고 선 흙이 '이란과 튀르키예 사이'임을 깨달은 순간 소스라치듯 돌아선다. 대신 그는 카메라로 마을 곳곳의 풍경과 사람들도 담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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