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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영화 '내 사랑' 블루레이(with 모드 루이스 그림 일러스트 포스터) 개봉 당시에 모드 루이스의 그림이 담긴 엽서 같은 게 있나 아마존과 이베이를 뒤졌으나 딱 이거다 싶은, 만족할 만한 물건을 찾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주에, 얼마 전부터 온라인 예약판매가 떠 있었던 의 블루레이가 서점에 들어와 있는 걸 보곤 그때 생각이 나서 한참을 들고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내려두었다. 영화를 함께 봤던 이가 아주 잠시 생각나기도 했다. 얼마 전 같았으면 사고 싶으면 앞뒤 생각하기보다 일단 사고 봤겠지만 요즘에는 한 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Maudie의 그림 덕에 나는 오늘도 속아 넘어가기로 했다. 모든 걸 가지지는 않아도 사랑이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할 수 있을까. 르 꼬르뷔지에 전시에서 봤던 '작은 궁전'을 생각나게 하는, 두 사람의 작은 집에 그려진 그림들이.. 더보기
12년 만에 다시 서울에서 만난, 서로가 서로인 줄도 모르고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잉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영화 가 그 끈의 시작이었고, 그때도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눴을 뿐 지난 게시글을 내려 훑거나 피상적인 신변 정보들을 파지 않았기에 지금껏 몰랐을 것이다. 너의 말처럼 정말 중요한 건 취향과 사유의 폭이지, 몇 살에 어디 살고 무슨 일 하는 누구인지는 따져야 할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지나, 12년 만에 영주가 아닌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된 우리. 줄 건 또 책 밖에 없고 잘할 수 있는 건 영화 얘기 책 얘기 밖에 없어 오늘도 수줍게 싸인이란 걸 했다는 이야기. 다섯 시간을 훌쩍 채운 월요일 저녁, 각자의 영화와 책, 음악, 여행지, 그게 결국은 사는 얘기. (2018.08.20) 더보기
영화 '더 랍스터'(2015) 사랑은 그 당사자인 두 사람만의 암호다. 어떤 타인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숲에서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통할 수 있는 신호들을 만든다. 는 커플이 되기를 강제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폐쇄적인 함께'와 '열린 혼자'라는 두 공간을 설정한 채 이상적이기만 한 것이라고 간주되는 사랑의 개념에 대해 관찰한다. 온전히 사랑의 두 주체만의 행위와 정신이 지켜질 수 없는 사회에서라면, 그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변질된다. 두 사람이 헷갈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두 암호는 "조심해, 위험한 것 같아"와 "세상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해"다. 둘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한편으로 감정의 칼자루는 스스로만이 쥐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는, "We love each other"라 하.. 더보기
영화 '공작' (2018) 본격적인 '흑금성' 작전을 수행하기 앞서 '박석영'에게 '최 실장'은 말했다. 유사시, 즉 그의 정체가 발각될 시 국가와 정부는 '박석영'의 공작 행위를 부인할 것이며 그는 상황에 따라 스스로 판단을 내려 행동해야만 할 것. 그리고 '박석영'은 그 순간을 맞이하자, 정말로 자신이 옳다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 가치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 후반에 이르러 '5년 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영화 속 앞선 일들과 그 톤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은 첩보 영화의 틀에 있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총성 없이도 긴장하게 만들고, 아는 역사적 배경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며, 무엇보다 '박석영'과 '리명운' 사이에 만들어지는 기류는 여러 차례 언급되는 사자성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어떤 에너지를 형성.. 더보기
동네에서 만난 고양이 전에 혼자만의 이름을 지어줬던, 여기서 몇 분 거리의 동네 다른 곳의 길고양이(소니, 공손삼)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때는 다가갈 수도 없는데 너무 섣불리 이름까지 지어버린 탓이 아닐까 생각했다. 간밤에 봤던 한쪽 눈이 불편한 고양이가, 비슷한 시간대에 바로 그 자리에 딱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처음 본 자리 바로 근처에 있었다. 동네이긴 하지만 여기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은 아니다. 눈이 성치 않은 모습이 마음에 걸려 간식과 물과 접시를 챙겨서 다시 찾은 것이었다. 계속 옆에 있으면 안 먹을까 싶어서 아예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왔는데 물도 줄어 있었고 간식이 담긴 접시는 깨끗하게 비워져 다른 곳에 뒹굴고 있었다. (빈 일회용 접시는 아주 가볍다.) 가방에 츄르 하나가 마침 더 있어서 .. 더보기
영화 '프란시스 하'와, 자기만의 방 공연을 마친 프란시스는, 보러 온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실수처럼 보이는 게 더 마음에 들더라고." 자신의 대답에조차 늘 확신이 없었고 ("Home, I guess", "Dancer, I guess") 당장 먹고 살 형편에 쫓기지만 그저 남에게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안간힘이던 프란시스는 이제, 자신이 발 딛고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지금 완전한 최선은 아니어도 스스로 꿈꾸는 미래를 져버리지는 않을 수 있게 된다. 실패와 좌절에서 배우는 내일의 태도, 기약할 수는 없지만 포기해버리지는 않는 마음, 직시한 현실로부터 다시 찾아보는 희망. 여느 좋은 영화가 그렇듯, 역시 진짜 여정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어디서든 내 이름 석 자 믿고 그걸 져버리지 않는 이야기가. (.. 더보기
'어린 왕자'와 '미스터 션샤인' 황현산 선생의 책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는 '『어린 왕자』의 번역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마흔네 번과 마흔세 번, 소행성 325와 소행성 3251, 숫양과 염소'의 번역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이 국내에서 일본어판을 중역한 것이기 때문에 생긴 '오류'라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 내지는 해명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머물던 1943년 프랑스어와 영어로 처음 발간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글에서, 황현산 선생님은 "1960년에 『어린 왕자』를 처음 한국어로 발간한 안웅렬 교수나 그 이후의 선구적 번역자들이 '소행성 3251'이나 '마흔세 번'을 쓰게 된 것은 일본어판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원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다. '염소'와 '.. 더보기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그때는 딱히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닌 아빠. 어쩌다 전화가 오면 영화 대사처럼 정해진 마디가 있다. 별 일 없쟤? 빈도는 적지만 하나 더 있다. 형아랑은 전화해봤나? 아 카톡했어요. 그랬더니 영주 한 번 왔다 가란다, 형은 그때 시간 된다고. 네 저도 괜찮을 거 같아요. 나는 가족에 있어서는, 별 일 없는 편이 대체로 좋다고 믿는 편인데, 그건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반찬은 있는지, 쌀은 있는지, 퇴근은 일찍 했는지, 엄마와의 통화도 대체로 그런 이야기들이다. 이번 달에도 한 번 내려왔다 가라시는 걸, 토요일마다 일이 있어서 어렵다고 했었다. 명절 아니면 굳이 집에 자주 왕래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별 일을 만들어보게 된다. 서울 아들, 부산 아들이 저마다 비싸게 구니 부모에게는 그 바쁨이 쓸쓸.. 더보기
구름 속의 지도, 지도 속의 구름 8월 초 개봉할 의 속편 제목이 '인과 연'이라는 것을 무심히 보다가 나는 정말로 '인(因), 연(緣), 과(果)'를 다루는 영화로 애착을 갖고 있는 (2012)를 떠올렸다. 그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와 방식, 그리고 원작 모두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특히 각별한 영화인 이유는 '블로그'를 하기로 하고 나서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쓴 영화이기 때문이다. 5년 전의 일이다. 물론 지금 다시 읽으면 도대체 저런 글을 쓴 게 내가 맞나 싶을 만큼 미문들과 미숙한 접근들로 가득한데, 그래도 가끔 꺼내어 살펴보면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하나의 세상에 실눈을 뜨기 시작한 내가 거기 있다. 처음의 블로그 제목은 '지니의 영화 V:U'였다. 퇴사를 하고 나서 백수 생활이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지고 있다. 무언가를 하고는.. 더보기
2018년 6월의 일기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가 긴 편력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었다." 이 말은, 선생님의 신간의 138쪽에서 담은 이 글은, 그의 번역으로 나온 [어린 왕자](열린책들, 2015)의 역자 해설에도 실려 있다. 유월은 그런 달이었다. 이미 읽은 문장에서 느낀 안전한 감정에 기댔고, 낯선 도전보다는 선생이라 느낄 만큼 신뢰하는 이의 텍스트에 기댔으며, 극장에서 만나는 신작보다 모르는 영화보다 안다고 여기는 영화에 빠져 들기를 희망했다. 읽은 시집을 다시 들고 다녔으며, 필사한 적이 있는 문장을 반복해서 꺼내곤 했다. 이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탐독보다는, 더 이상은 불안하고 싶지 않았기 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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