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적끄적 썸네일형 리스트형 더 이상 당신에 대해 쓰지 않겠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는 말에는 '자신보다'라는 단서를 붙인다 한들 스스로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단서가 섞여 있겠다 생각하는 쪽이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은 곧 내가 당신에게 정확히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얘기.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고맙다고 했고, 잘 가라고 했고, 손을 흔들었다. 커피 얼룩이 묻은 채 거의 빈 머그, "잠시 후 도착 버스는..." 안내가 쉴 틈 없이 들리던 버스 정류장,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기 전에 그 버스에 다가서던 사람들, 그리고 당신까지. 어떤 기억은 생생한 풍경으로 남아서 소환되곤 한다. 추위를 많이 타니까, 아프지 말라고 했고, 당신의 말은 "치,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하다니. 나쁘다." 같은 것이었다. 웃어보였던가. 그.. 더보기 연말의 우리들, 박준의 시를 떠올리며 눈은 다시 내리고나는 쌀을 씻으려며칠 만에 집의 불을 켭니다 섣달이면 기흥에서영아가 올라온다고 했습니다모처럼 얻는 휴가를서울에서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지난달에는 잔업이 많았고지지난달에는 함께 일하다죽은 이의 장례를 치르느라서울 구경도 오랜만일 것입니다 쌀은 평소보다 조금만 씻습니다 묵은해의 끝, 지금 내리는 이 눈도머지않아 낡음을 내보이겠지만영아가 오면 뜨거운 밥을새로 지어 먹일 것입니다 언 손이 녹기도 전에문득 서럽거나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우리는 밥에 숨을 불어가며세상모르고 먹을 것입니다 (박준, '좋은 세상',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서) *계절이라면 몰라도 날짜나 요일에 대해서라면 비교적 둔감하려 노력하는 편인 나 같은 사람도 '연말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 장소.. 더보기 새해를 맞이하며 미리 써둔 끼적임_인스타그램을 생각하며. 새해를 맞이하며 미리 써둔 이야기 _ 미안한 말일 수 있으나 전에는 '잘 보고 있어요' 같은 말이 무성의하다고 생각했다. 뭘 어떻게 보았고 무슨 생각을 하거나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가 담겨 있지 않으니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기계적인 리액션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돌아보면 보았고 읽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이 있겠다 여기게 되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읽는 건지 염탐을 하는 건지 읽었지만 별로였는지 읽을 마음이 없는지 어떤지 등등 알 길이 결코 없으니까. 언젠가 오프라인에서, 나의 글에 그 어떤 반응 한 번도 한 적 없는 사람이 '잘 읽고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의 그 멋쩍은 기분을 아직 기억한다. 그에게는 진심이기도 했을 테지만 내게는 그게 인사치레를 넘어서는 의미로는 느껴지지 않았기 .. 더보기 JTBC 드라마 'SKY캐슬'(2018)을 보면서 현실에서 의도적으로 조금 튀어나온 듯한,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냉혹한 스릴러가 지니는 극도의 현실감. 얼핏 수임의 가정을 제외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정상적인 인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저마다 각자의 동기나 욕망에 지극히 충실한, 혹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라는 점이 이 입체적인 드라마를 계속 지켜보게 만든다. (좋은 캐릭터는 타인이나 외부 환경에만 휘둘리는 게 아니라 일단 스스로의 동기를 벗어나지 않을 줄 아는 캐릭터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주된 시선은 수임이 아니라 서진이되, 영화가 아닌 드라마만이 할 수 있는 분량 배분 덕에 이 작품의 지형도는 훨씬 입체적이다.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우주나 혜나를 응원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수임의 존재가 캐슬에 주는 영향처럼, 예서나 예빈과 같은.. 더보기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그 음악이 곁에 있다는 것 사람의 곁에 음악이 있다는 것, 그걸 가슴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 슬며시 다가와, 반드시 치유해줄 거라는 확언 같은 것은 하지 않은 채, 몸을 가만히 적시며 너만이 느끼는 그 고유한 슬픔을 낫게 해 줄 거라고 ('try to fix you') 다감히 이야기 건네는 것. 확신하지는 않은 채로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는 ('I will try') 것. 눈을 감은 채로 혹은 누군가를 부둥켜안으며, 혹은 빛을 바라본 채, 보이는 것을 듣고 또 들리는 것을 보며 시공간을 가득히 느끼게 해주는 것. 음악이 하는 일이란,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너는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 다만 먼저 말하는 게 아니라 들을 때까지 한없이 거기서 기다릴 줄을 아는 일이다. 무작정 잡아끌지 않고 내가 걸음 할.. 더보기 가지 않은 길 대신, 주어진 길을 바라봐야지. "(...) 이쯤 되면 우리야말로 여러 갈래의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외로운 선택을 한 사람의 자기 긍정을 표현한 시? 자의적 선택에 사후적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자기기만을 꼬집은 시? 후회가 많은 이에게 들려주는 부드러운 충고의 시? 나의 대답은,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한 번 놓친 길은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 시는 말하지만, 작품은 길과 달라서, 우리는 시의 맨 처음으로 계속 되돌아가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남김없이 다 걸어도 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해석에 관하여 쓴.. 더보기 콜드플레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Coldplay: A Head Full of Dreams'(2018) 콜드플레이의 공연 실황과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인 . 제작사는 아마존 스튜디오이며 작품을 연출한 맷 화이트크로스는 이미 오아시스의 이야기를 담은 (2016) 등 여러 편을 연출한 베테랑이다. 아마존이 운영하는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스트리밍으로만 공개되는 작품이고,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11월 14일 단 하루만 극장 상영을 진행했다. 프라임 비디오는 웹과 앱 모두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지만, 는 한국어 자막을 포함하고 있다. 프라임 비디오는, 북미라면 모르겠으나 적어도 국내 사용자 환경에서는 (첫 6개월간은 매월 2.99달러, 이후에는 5.99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구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를 대체할 만큼의 강점이 있다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아마존이 IMDB, Boxoffice.. 더보기 한때 소중했던 것들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다가오지 않은 해의 일기장을 미리 사 거기 표지를 달고 부제를 적듯 내일에 얼마간 사로잡혀 있었다. 혼자의 내일은 어떨지 또 누구인가와 함께인 내일은 어떨지 달력을 들여다 보며 도래하지도 않은 날짜들을 생각하느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앞으로 내게 아주 특별한 것이 될 거야, 라고 주문처럼 되뇌느라. 단지 소중한 것들 중 하나가 아니라 어쩌면 가장 소중했던 것. 여전히도 내게는 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시간을 허락하는 일. 스스로에게 오늘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였던 곳은 그곳이 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다만 한때였을 수도 있다. 이미 짧은 가을이 그래서 더 짧았다. 이미 긴 겨울이 그래서 더 긴 겨울이 될 것이다. 그래도 .. 더보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6 시즌 4에서 프랜시스에 이어 클레어 역시 시청자를 향해 처음 방백("We make the terror.")을 했을 때의 놀라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만큼 여러 시즌을 거듭해도 드라마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시리즈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빼놓는 건 불가능한데, 첫 시즌 때의 강렬함은 아닐지라도 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강력한지를 증명하기에 시즌 6는 부족하지 않다. 촘촘한 이야기보다 강력한 캐릭터와 배우 하나로도 드라마가 이끌어질 수 있다는 것. (로빈 라이트는 이전 시즌에서도 일부 에피소드의 연출을 직접 맡기도 했고, 이번 시즌 역시 Executive Producer로 참여했다) 결과적인 이야기이나 8부작이 아니라 이전.. 더보기 어떤 편지 편지를 주기로 한 날에는, 봉투에 담아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 후 그걸 재킷의 안주머니에 고이 넣은 채 그날 온종일 몸 가장 가까운 곳에 지니고 다녔다. 봉투가 어디 가지 않고 잘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무심코 안주머니가 있는 쪽 가슴에 손을 대어보기도 했다. 습관처럼 주머니를 손으로 더듬을 땐 전화기보다도 편지의 안부를 먼저 확인했다. 미약한 문장으로 쓰인 글로는 다 담아내기 힘든, 조금의 온기가 더 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어떤 편지는 끝내 전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더보기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