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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끄적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6 시즌 4에서 프랜시스에 이어 클레어 역시 시청자를 향해 처음 방백("We make the terror.")을 했을 때의 놀라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만큼 여러 시즌을 거듭해도 드라마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시리즈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빼놓는 건 불가능한데, 첫 시즌 때의 강렬함은 아닐지라도 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강력한지를 증명하기에 시즌 6는 부족하지 않다. 촘촘한 이야기보다 강력한 캐릭터와 배우 하나로도 드라마가 이끌어질 수 있다는 것. (로빈 라이트는 이전 시즌에서도 일부 에피소드의 연출을 직접 맡기도 했고, 이번 시즌 역시 Executive Producer로 참여했다) 결과적인 이야기이나 8부작이 아니라 이전.. 더보기
어떤 편지 편지를 주기로 한 날에는, 봉투에 담아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 후 그걸 재킷의 안주머니에 고이 넣은 채 그날 온종일 몸 가장 가까운 곳에 지니고 다녔다. 봉투가 어디 가지 않고 잘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무심코 안주머니가 있는 쪽 가슴에 손을 대어보기도 했다. 습관처럼 주머니를 손으로 더듬을 땐 전화기보다도 편지의 안부를 먼저 확인했다. 미약한 문장으로 쓰인 글로는 다 담아내기 힘든, 조금의 온기가 더 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어떤 편지는 끝내 전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더보기
이 끝은 얼마만큼의 과정입니까 돌아보면, 무르익은 계절보다는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무렵 그 사이와, 실내외의 온도차가 클 무렵이 나는 언제나 편치 않았다. 그러나 괜한 의미를 이곳저곳에 부여하지 않기로 하고, 나만 대단한 시련을 겪는 사람인 척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힘들 때 찾아 들었던 노래들과, 숨어 들었던 시들을 다시 꺼내는 것 정도. -내가 당신을 귀하게 여겼던 것만큼 누구에게든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겼던 것만큼 누구에게든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지길 바랍니다 내 가장 아픈 곳을 밝혀 사랑한 것만큼 누구에게든 가장 깊은 사랑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지나간 날들이 당신에게 슬픔의 기록으로 남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고통과 자기 연민의 도구로 쓰이지 않게 되길 바랍.. 더보기
벌써 11월 가을은 이렇게 짧구나.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혹은, 지나고 보니 11월이 되어버린 걸 발견했다. 계절은 모두에게 공평할 것이다. 날씨도 마찬가지겠다. 좋은 날씨, 나쁜 날씨가 나뉘는 게 아니라 저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을 날씨들이겠다. 며칠 내내 심규선(Lucia)의 노래만 듣고 있다. 전부터 폰 재생목록에 몇 곡이 있었고 아주 새롭게 접한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특히 지난 얼마의 시간은 오로지 이 사람 노래만 들었다, 고 해야겠다. '부디', '이제 슬픔은 우리를 어쩌지 못하리', '소년에게', '외로워 본' 등 유난히 맴돌았던 몇 곡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다가오는 것들에 여전히 의연하지 못한 무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주에는 듣고 싶었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강연 행사에 다.. 더보기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2018) 드라마를 영화만큼 많이 봤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좋은 드라마는 첫 회부터 자신의 장점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연예인을 가볍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며 폄하하기 바쁜 대중들과 매체의 행동을 정확하게 짚고 있으며, 작품이 정해놓은 설정이 단지 소재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역시 알 수 있다. 그 바탕이 있고서야,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의 얼굴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여러모로 이후 전개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다움', '-스러움' 같은 말들로 아무렇지 않게 개인의 고유성을 훼손시키거나 무시하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늘 '나다움'을 고민한다. 공동체로 포장된 사회에서 '나'로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애쓰는 사람들은, 비슷한 일을 겪어본 이.. 더보기
넘어지지 않게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걸어갈 거야.넘어지고 무릎을 다치고 손바닥이 까져도,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일어날 거야.그리고 내가 일어날 수 있는 건곁에 있는 당신으로 인해서일 거야.만약 내가 아닌 당신이 넘어진다면손을 잡아주고 옷을 털어주며다친 곳은 없는지 아프지는 않은지살피며 물어볼 거야. 더보기
허수경 시인의 밤 허수경 시인의 시와 산문, 소설을 주제로 낭독도 하고 각자의 이야기도 나눈 자리. 그동안 들르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못했던 '서점, 리스본'에 드디어 걸음을 했다. (전부터 정현주 작가님을 뵙고 싶기도 했다.) 오늘 저녁의 대화는 세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예쁜 잔에 아담히 준비된 티를 마셨고, 누군가는 다과를 들고 오기도 했다. 어떤 책을 가져가면 좋을지 몰라 내게 있는 허수경 시인의 책을 다 들고 갔고 발문이 실린 박준 시인의 시집까지 가져갔더니 나는 어느새 '책을 제일 많이 가져온 사람'이 돼 있었고 치과 다녀온 이야기,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까지 화제는 어디로든 향했다. 각자가 읽은 시와 각자가 느낀 시인의 삶, 저마다의 일상과 사연들이 어우러져 결국은 그게 사는 얘기, 그리고 읽는 .. 더보기
쓰는 사람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쓰는 사람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_____말로 해버리면 편할 것을, 굳이 글로서, 글로써 쓰는 일은 괴롭습니다. 머리와 손을 써야 하는 육체 노동이며, 단어와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드는 문장 노동이며, 말보다 훨씬 그 속도가 느리기까지 합니다. 기껏 고생해서 몇 자 적어봐야 읽는 사람은 한정돼 있습니다. 원고지 두어 장 남짓의 단문에도 요즘 사람들은 ‘길다’고 그걸 내려버립니다. 유튜브 영상들의 썸네일과 제목은 더 자극적이고 현혹적이며,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사’들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조회 수,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말 써가며 글로 만드느니 사진이나 영상으로 할 말 전하는 게 훨씬 더 간편하고 때로는 효과적일 때도 있을 텐데. 우리는 왜 굳이 글을 .. 더보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 샘 스미스, 추가 티켓을 예매하다 지난 제주도에서의 첫째날 밤, 예정에 없게 들른 LP바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샘 스미스의 'Stay With Me'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건 일종의 복선 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콜드플레이 공연 때보다도 지금이 더 기쁘다고도 생각해본다. 남은 올해는 제법 괜찮은 날들이 있지 않을까. 이런 하루들이 조금 더 곁에 있어준다면. (2018.09.11) 더보기
엘리 굴딩의 첫 내한 공연, Love Ellie ! "You can tell everybody this is your song"('Your Song'에서) 공연의 시작, 정규 앨범 'Delirium'의 1번 트랙 'Intro'가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속으로 탄성을 깊이 지르고 있었다. 자신의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또 생동감을 준다. 마이크에서 입을 뗀 순간에도, 그녀는 언제나 말을 하고 노래를 하며 춤을 추고 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자신의 모든 것은 바로 여기 있다는 듯이. 그래서 내내 이 좋은 자리에서, 불과 50m 남짓 떨어져 있을 이 가까운 자리에서, 마음까지 쫑긋하며 시간을 붙잡을 수 있었다. 라이브로 자주 부르지는 않는 곡이라며 엘튼 존의 'Your Song'을 불러주던 순간이 나는 가장 행복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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