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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실화인 <미스비헤이비어>가 2020년대에 유효한 이유
미인대회 하면 무엇을 떠올리겠는가. 수영복만 입은 여성들은 앞뒤와 좌우로 훑으며 그들의 신체 부위 사이즈를 전자 제품의 스펙처럼 계량화 하고, 그들의 몸을 '평가'하는 대회. 좋은 심사를 받기 위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여성 참가자들을 상품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놀랍게도 1970년 미스 월드 대회는 달 착륙이나 월드컵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생중계로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미스 월드 대회의 주최 측은 사업적 수완을 발휘해 이를 패밀리 엔터테인먼트로 적극 포장했다.
물론 5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여성의 사회적 권리에 있어서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참정권 등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는 데 초점을 두었던 1세대 페미니즘, 문화 등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사적 영역에서 여성의 해방을 촉구한 2세대 페미니즘, 다양한 인종과 연령, 사회 계층으로 확대한 3세대 페미니즘에 이어 여전히 여성들의 목소리는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확산되고 있다. 한 사회가 전면적인 변화를 이룩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시대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연출 방식이 영화 <미스비헤이비어>의 후반부에 드러난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한 '샐리 알렉산더'의 얼굴과 실제 '샐리 알렉산더'의 얼굴을, 그리고 제시 버클리와 구구 바샤-로가 연기한 '조 로빈슨'과 '제니퍼 호스텐' 그리고 실제 '조 로빈슨'과 '제니퍼 호스텐'의 얼굴. 영화 말미에 이르러 <미스비헤이비어>는 성 상품화에 반기를 든 주역들의 얼굴을 포개어놓는다. 1970년대의 얼굴과 2020년 현재의 얼굴을. 미스 월드 대회 이후에도 각자의 길을 걸으며 꾸준히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실제 인물들의 발자취를 <미스비헤이비어>는 존중하면서도 동시대 관객이 포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화법을 통해 유의미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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